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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채무자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 구본기

등록 2015-10-12 18:48

채무자 홍길동은 몇번의 돌려막기 끝에 값진 교훈을 얻는다. ‘빚(금융)으론 빚(금융)을 갚을 수가 없다!’ 홍길동에게 필요한 건 ‘싼 이자’가 아닌 ‘더 많은 소득’이다. 즉, 소득 수준이 개선될 여지가 전무한 지금 저 홍길동에게 돌려막기란 ‘채무연체행 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결국 홍길동의 부실채권은 대부업체 등에 5% 미만의 헐값에 팔린다. 홍길동에게 대출을 해주었던 A은행이 다른 업자들에게 소위 ‘땡처리’를 하는 것이다. 그걸 사들인 대부업체는 기존 대출원금에 고율의 연체이자를 더해 ‘전문추심’에 임한다. 이렇게 하면 100만원짜리 채권을 5만원에 사들여 (이자를 더해) 200만원을 받아낼 수가 있다(그렇다, 연금술이다!).

채권시장의 이런 ‘사장님이 미쳤어요’식 할인판매 구조에 착안하여 시작된 것이 바로 ‘주빌리은행’의 채권소각 운동이다. 시장에 나뒹구는 부실채권들을 주빌리은행이 직접 (일반 대부업체와 마찬가지로 헐값에) 사들인 뒤 일괄 소각한다. 단돈 5만원으로 빚 200만원을 없애는 기적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운동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 판매사가 주빌리은행에 채권을 매각하지 않으면, 주빌리은행으로서는 그것들을 사들일 다른 방도가 없다. 주빌리은행이 대한민국의 모든 부실채권을 사들일 수는 없다. 주빌리은행 운동이 ‘반짝 캠페인’에 그치지 않으려면, 손에 잡히는 제도적 대안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하는 제언이다. 채무자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주자. 우선매수청구권이란 ‘어떤 자산이 매각될 때, 그 자산을 제3자가 우선해서 매수할 수 있게 하는 권리’를 말한다. 부동산경매에서 ‘공유자의 우선매수청구권’이 한 예다.

채무자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이 생기면 앞서의 홍길동 이야기는 이렇게 바뀐다. ① A은행이 홍길동에게 “당신의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팔겠다”는 내용을 통지한다. ② 그러면 홍길동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③ 그 권리에 의해 자신의 채권을 일정 조건하에 사들여 스스로 소각한다.

채무자 스스로가 자신의 채권을 사들인다는 발상에서 모순을 느낄 수도 있겠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의구심이 따라붙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제시한 건 초안이다. 실제 제도야 얼마든지 유연하게 설계될 수 있다. 채무자가 아닌 특수관계자나 지정된 제3자 또는 특정 대부업체 등이 채무자의 우선변제권을 대위하여 행사하도록 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이 제도에 관한 열린 논의다.

구본기 구본기재정안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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