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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치주의의 중국화 위기 / 송기호

등록 2015-11-04 18:44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의 면전에서, 징역 1년6월을 구형받은 일본인 기자를 위한 ‘적절한 대응’을 직접 요구할 수 있었을까? 그는 한국 법원이 공판 심리를 마쳤음을 알았을 것이다. 이달 26일로 선고 날짜를 잡은 것도 모르지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도 그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에게 ‘적절한 대응’을 요청했다.

이것은 한국의 법치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언행이다.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지 말라는 훈계를 한 것이다. 아베 총리가 누구인가? 그는 1997년에 ‘일본의 미래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을 만들어 초대 사무국장이 된 사람이다. 이 모임은 제2차 아베 내각 19명의 대신 중 9명을 차지할 만큼 강했다. 똘똘 뭉쳐 일본 역사교과서가 ‘자학사관’으로 편향되었다고 공격했다. 그들의 초점은 교과서에서 군대위안부 서술을 삭제하는 것이었다.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한사코 부인했다. 이런 사람에게 한국의 대통령이 직접 언론자유 훈계를 듣는 처지가 되었다.

아베의 언행은 치밀한 전략이다. 한국은 19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아시아의 민주적 법치의 가능성으로 주목받았다. 한국 이전에 일본의 법치주의가 나타났다가 군국주의로 타락했다. 한국 법치주의는 아시아의 새로운 대안이었다. 중국은 정보공개 조례를 비롯해 여러 법을 만들 때 일본보다 한국을 더 참고했다. 한국 법치주의의 정점은 개성공단이었다. 그곳에서 북은 남의 법치주의를 관찰해서 16개의 규정을 만들고 실험했다. 북이 마침내 ‘라선경제무역지대법’에 행정소송 절차를 둔다고 규정한 것은 주목할 만한 발전이었다. ‘부동산관리법’에 토지와 건물의 등록 대장을 도입한 것도 개성공단 경험의 소산이다.

그러나 한국의 법치주의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뒤의 노동자 해고와 촛불 시민에 대한 탄압을 거치면서 동력을 잃었다. 일본은 한국 법치주의의 가능성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의 일본인 기자에 대한 탄압을 계기로 법치주의에서도 일본이 더 우위라고 내외에 선언한 것이다. 일본의 전략은 치밀하다. 일본의 주도권은 항상 한국을 열등하다고 규정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권력이 하나의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선택권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겠다는 입법예고에 대해 약 47만명의 국민이 의견을 제출했다. 권력자는 인터넷으로 받지도 않았고 팩스는 일부 시간에 꺼 놓았다. 국민의 참여를 막을 수 없자 국민의 의견을 검토조차 하지 않고 확정고시를 했다. 유일사관이 학생들에게 주입되는 데에 법이 수단이 되고 절차가 되었다.

나는 이 사태를 한국 법치주의의 ‘중국화’라고 부르고 싶다. 법치주의는 무엇인가? 권력을 법에 복종시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는 법이 권력의 지배 수단이 된 사건이다. 권력자 한 사람의 영도 앞에 법이 복종한 것이다.

신중국을 건설한 중국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 모델은 중국 인민의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법이 권력자의 영도에 이바지하는 중국화는 한국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중국 교육부가 검인정한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8종이다. 이 중 베이징에서는 주한궈 교수가 집필한 베이징사범대학 출판사와 리웨이커 교수의 인민교육출판사 교과서를 많이 선택한다. 이제 한국의 국정 유일 역사교과서를 가지고 중국인 앞에서 무어라고 할 것인가?

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법의 이름으로 유일사관을 주입하는 국정화는 법치주의와 함께 갈 수 없다. 아시아에서 빛나는 법치주의 매력 국가 한국이 되려면 국정화 고시를 철회해야 한다. 아베의 훈계를 받으면서도 왜 그의 발자취를 뒤따르고 그의 전략에 봉사하는가?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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