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혐의를 받고 있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에 대해 지난주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났다. 이로써 국가정보원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지목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더구나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가 조작됐음이 중국 쪽에 의해 드러난 뒤 증거조작에 가담한 이들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독재시대의 증거조작에 의한 간첩 만들기가 고스란히 되풀이된 것이다.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미 국가정보원은 2012년 대선 당시 조직적인 여론조작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국정원 개혁을 약속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났지만 개혁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국정원은 무소불위의 전횡을 휘두르고 있다. 이번 사건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국민의 기본권을 증거조작이라는 비열한 방법으로 침해한 사건으로 사안의 중대성이 작지 않다. 그런 만큼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공표하고 이른 시일 안에 대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국민에 대한 예의이며 본인의 발언에 대해 책임지는 공직자의 자세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의 ‘이념’이 편향되었다며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고 있다. 역사교과서의 ‘이념’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지금 국정원이 보여주고 있는 민주주의 ‘이념’에 반하는 행동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민주주의는 정치제도이자 우리 사회가 지켜가야 할 가치이고 그 자체가 ‘이념’이기도 하다. 역사 저술을 닦달하기 전에 자신들이 ‘이념’적으로 올바른 행보를 보여왔는지, 자신들의 과오를 어떻게 바로잡고 잘못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이념’에 반하는 일이 자행되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부에서 만든 교과서를 독재를 옹호하는 교과서로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민간인 사찰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터진 지 어언 5년이 지난 지금, 새누리당 정권이 그때의 한나라당 정권과 무엇이 다른지, 그토록 이념과 가치를 부르짖는 박근혜 정부가 늦게라도 보여줬으면 한다. 그러지 않고서 또다시 정권을 가져가려 한다면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행태다.
정말로 궁금하다.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집단에는 ‘종북 좌파’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반박의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스스로 민주주의 가치에 어긋나는 과오를 저지르는 것에는 어찌 이리 관대하기 그지없는지 말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격언도 있다. 부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용단을 내리기를 기원한다.
박병규 서울 양천구 목5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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