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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법사위의 ‘저작권법 수정안’에 반대한다 / 이상정

등록 2015-11-25 18:51

지난 30여년 동안 디지털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과거와 달리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범죄는 문화 이용에 따른 위험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로 둔갑해 옥죄어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용자·소비자는 저작권 문제로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그만큼 저작권 제도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문화의 이용 행위 유형이 다양화되었음에도 아직도 저작권법의 내용은 출판 시대에 머물러 있다. 예컨대 우리 저작권법은 권리침해죄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없이 다양한 디지털 이용 형태가 있고 그에 따른 침해 형태도 그만큼 다양해졌는데, 허락 없는 이용을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등으로 처벌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 본다.

과거의 저작권 침해자는 ‘어른’ ‘사업자’들이었지만 지금은 ‘청소년’ ‘소비자’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어른·사업자 시대의 법률을 그대로 두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이 와중에 청소년 위반자를 상대로 적당한(?) 선에서 합의해주는 것이 이른바 법률회사의 새로운 사업모델로 각광을 받게 되었고 ‘저작권 파파라치’ ‘합의금 장사’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고소 남발에 따른 전과자 양산을 막기 위해 검찰은 저작권 교육을 조건부로 기소를 유예하고 있으나 ‘교육 조건부 기소 유예제’의 순기능에도 합의금 장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끌려오듯 들어와 억지로 받는 교육의 효과도 의문이다.

이에 박혜자 의원 등이 2013년 12월 저작권 침해죄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제한하려는 취지에서 저작권법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그런데 법안 검토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개정안의 취지는 타당하다”고 보나 “처벌 가능 기준을 ‘180일 동안 총 소매가격 500만원 이상’으로 정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500만원이 100만원으로 축소되었다. 이는 미국의 관련 법이 180일 이내에 1000달러 미만의 저작권 침해는 형사처벌에서 제외하는 것을 참고한 것이다.

그런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통과시킨 이 개정안에 대해 최근 법제사법위원회가 ‘금액 100만원’을 삭제하고 친고죄의 범위를 확대하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이는 청소년을 비롯한 소액 저작물 이용자를 범법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원래의 입법취지를 몰각한 것으로, 오히려 합의금 장사를 부추기지 않을까 매우 우려된다. ‘100만원’ 저작권법대로라면 한 곡당 10원도 안 되는 음원을 몇 곡 훔쳐야 처벌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저작권단체의 우려도 있으나, 오히려 한 곡당 10원도 안 되는 음원을 하나만 훔쳐도 처벌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정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장발장에 대한 처벌에서도 그가 훔친 빵 한 조각의 가격이 10원은 넘었을 것이다. 저작권법 개정안은 지금이라도 원래의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이상정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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