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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거대한 폭력과 비폭력 저항 / 이재봉

등록 2015-12-02 18:42

폭력은 크게 두가지다. 개인이나 단체가 저지르는 물리적 폭력과 국가의 법이나 사회제도 등이 자행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정부나 지배세력은 그들의 권력이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거대한 구조적 폭력을 행사한다. 민중 또는 피지배층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한다. 독재정치 또는 ‘위로부터의 폭력’이 민중의 저항 또는 ‘아래로부터의 폭력’을 부르는 것이다.

지배세력의 구조적 폭력은 크고 체계적이지만 정적이고 지속적이라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심각한 폭력성을 내포해도 통치행위로 정당하다고 묵인되거나 사회구조에 내재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기 쉽다. 피지배층의 물리적 폭력은 작고 국지적이지만 동적이고 일시적이어서 쉽게 눈에 띈다. 약자의 저항수단이지만 불법행위로 간주되거나 비도덕적이라고 비난받기 쉽다.

독재정권의 거대한 폭력을 민중의 조그만 폭력으로 물리치기는 어렵다. 돌이나 쇠막대 또는 화염병 등으로 ‘차벽’을 뚫고 물대포와 최루탄을 이길 수 있겠는가. 물론 평화적으로 시위하겠다는데도 ‘차벽’으로 ‘원천봉쇄’하는 정권의 불법에 좌절과 분노를 억누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비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용기다. 폭력투쟁은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민중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권에 폭력진압의 빌미를 줄 뿐이다. 독재정권이 폭력투쟁을 선호하거나 유도하는 배경이다.

비폭력운동의 선구자 간디는 불의와 부정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되 상대방의 육체를 찌르는 폭력적 저항보다 상대방의 양심을 찌르는 비폭력 저항을 주창했다. 비폭력 저항을 못 하겠으면 폭력을 써서라도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면서. 그 대신 악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은 무능이나 비겁이라고 비판했다.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양심을 따르기 위해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불복종’도 필요하고, 바람직한 질서를 세우기 위해 권력에 협력하지 않는 ‘비협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폭력 저항의 본질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도덕성과 종교정신을 바탕으로, 지배세력을 폭력으로 패배시키는 대신 정신력과 포용력으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상대의 육체에 고통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상대의 양심을 찌르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위를 막는 경찰에게 돌멩이나 화염병 대신 꽃이나 사탕을 건넴으로써 그들조차 사악한 정권을 등지고 민중의 편에 서도록 감동을 주는 것이랄까.

둘째, 정치사회적으로 권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며, 떠받치거나 추종하지 않는다. 건축물의 벽이나 지붕을 파괴하지 않고 기둥을 제거하면 아무리 견고한 건축물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듯이, 통치체제나 지배세력에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민중이 지지하거나 추종하지 않으면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 다수의 민중이 가만있거나 굴종하지 않고, 협력하지 않으며 나아가 반대하고 저항하면 아무리 폭압적인 정권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1960년 이승만의 하야를 불러온 4월혁명, 1979년 박정희의 죽음과 유신체제의 붕괴로 이어진 부산과 마산의 시민항쟁, 1987년 전두환과 노태우의 후퇴를 이끌어낸 6월항쟁 모두 폭력투쟁이 아니라 비폭력 저항이었다. 부정선거, 종북몰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독재와 횡포, 억지와 오만 등 거대하고 지속적인 구조적 폭력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재봉 원광대 교수(정치학·평화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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