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법으로 대학가에 비상이 걸렸다.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강사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법 시행이 오히려 선택받지 못한 다수를 사실상 실직 상태로 몰아갈 듯하다. 법 시행의 번복과 법안 폐기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 와중에 우리 대학 전임교수들의 교내연구비가 대폭 축소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신청자 대부분이 받을 수 있었던 교내연구비도 연구업적에 따라 경쟁하는 시스템이 도입되는 모양이다. 국내 상당수 대학들이 겪고 있는 재정난이 이러한 문제를 낳고 있지만, 재정 상황이 개선되면 이 문제는 원래대로 환원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전부터 전임교수들이 거의 급여처럼 받는 교내연구비 예산만 시간강사들에게 돌려도 강사들의 처우가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연구를 열심히 해서 경쟁력이 있는 교수들은 교외연구비를 받고, 그 반대의 경우는 아쉽지만 못 받아도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대학교수들이 새로운 상황에 점차 적응해갈 것이듯 말이다.
나는 시간강사법 때문에 이미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본질적 원인이 소수의 독과점 구조에 있다고 본다. 구도 창출의 책임 여부와 상관없이, 그 소수란 당연히 나처럼 운 좋게 교수가 된 사람들이다. 국내 대학들의 전임교원 확보율이 의대나 자연계열을 제외하고 60~70%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은, 전임으로 채용할 만한 여유가 아직 상당히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이 얘기를 듣는 대학 관계자들은 대학들이 인건비로 쓸 수 있는 파이가 제한적이지 않으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처럼 교수가 사회적·경제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는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니 학문과 교육보다는 그 직업 자체를 선망하여 교수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고, 실력보다 정치적 역량이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교수가 하늘이라면 강사는 땅이라는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불합리한 현실이 고착화되는 것이고.
결국 시간강사 문제의 해결 방안은, 정부의 파격적인 개혁안을 기대할 수 없다면, 한쪽으로 지나치게 편중된 파이를 조금이라도 균형 있게 나누어 가지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이 어렵게 얻은 과실의 일정 부분을 쉽게 포기하려 하겠는가?
그러니 결국 정책적으로 실행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대학 행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교육부가 대학 평가 때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를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집어넣으면 된다. 이 제안이 실행된다면, 강사의 실제 사용자인 대학들이 좀더 전향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을까. 앞에서 언급한 전임교수들의 교내연구비 양보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나눔을 시간강사 문제 해결의 첫 단추로 삼아 정부와 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더욱 실현 가능성이 큰 개혁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구조조정 같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생계마저 위협받는 대학의 교수들께는 정말 미안한 얘기다. 대학 간의 경쟁구도 때문에 불철주야 지표 개선에 노력하는 대학 관계자들께 또 다른 짐을 지우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근래 들어 대학 사회를 압박해오고 있는 여러 제약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여전히 대학교수가 대한민국의 최고 직종임을 부인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같은 배를 탔지만 어떤 연유에선가 아직도 밑바닥의 삼등칸에서 학문적 열정을 이어가는 동료들에게 기꺼이 기득권의 일부를 나누고자 하는 지성들이 생각보다 많으리라 믿고 싶다. 이 나눔이 현실화될 때, 대한민국의 대학은 처우는 조금 약해지더라도 평생을 학문에 바치고자 하는 진정한 연구자들로 채워질 것이다.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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