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토리 사회’라고 한다. 입시시장이나 취업시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 말을 강조한다. 얼핏 스펙에 얽매여 힘들어하던 청년 세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크게 다르다. 입시생들은 여전히 밤늦게까지 야자를 하고 학원에 치인다. 취업준비생들은 토익과 봉사활동과 서포터스 활동에 눈코 뜰 새 없다. 사회는 스펙에서 스토리로 변했다는데, 청년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은 왜 그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일까? 아니,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아진 느낌도 든다.
말은 스토리 사회라지만 지금도 이력서에 공모전과 어학연수, 기업 서포터스와 해외봉사가 없으면 좀 민망하다. 스토리 또한 그 스펙들을 설명하면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결국 스토리도 제도화된 체계 속에서, 스펙에 의존하여 찾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왜 그런 스토리밖에 만들지 못할까? 그들이 너무나 개성이 없고 수동적이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됐는가? 청년만의 문제인가?
기성세대는 스펙을 대체하는 스토리의 등장이 취업시장에 치여 몰개성화되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개성을 찾을 수 있는 활로인 것처럼 말한다. 스토리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학점 관리나 토익에 치여 사는 대학생들을 동정하면서 새로운 세계와 삶을 만나러 가라고 당부한다. 이젠 스토리의 시대니 조금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살라고.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현실과 끊임없이 부딪치는 대학생들에게는 가혹하게 이상적인 말이다.
스토리란 원래 참 좋은 말인데,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질까? 스토리란 말이 취업시장에서 쓰이는 말이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청년들은 시장에서 보여져야 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경쟁하는 존재다. 스펙이건 스토리건 간에 청년들이 목을 매는 이유는 취업을 위해, 입시를 위해 돋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청년들은 이제 더 많은 스펙보다 더 특별한 스토리를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고, 갈등과 위기를 창의적이고 멋들어지게 해결해야만 한다. 또 그걸 해내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열등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머지 삶의 스토리들은 가치를 잃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특별하고 유일한 스토리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 않은 스토리들은 무가치한가. 스토리란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삶의 이야기다. 오히려 취업을 위해 지어낸 특별한 스토리보다 더 진정성 있지 않을까.
스토리를 만들라는 당부에는 자발성에 대한 촉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조차 기성세대에 의해 수직적으로 내려오고, 청년들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주체적으로 살라는 요구에 의해 오히려 주체성을 상실하는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스토리 사회로 진입했다는 인식은 사람들의 관심이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음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스토리는 원래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청년 세대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할지, 진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상훈 서울시 강서구 우장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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