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온 세상 들썩이도록 “함께 소리쳐” 주세요 / 박김영희

등록 2015-12-17 19:07

칼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면 떠오르는 삶이 있다. 2년 전, 33살이라는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등진 준혁이라는 친구다. 준혁은 수급자이면서 지적장애가 있었고, 부당한 복지제도를 바꾸기 위한 사회운동에 열심이었다. 장애인 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준혁은 눈빛이 참 선하고 쓰레기 치우기, 전단지 나눠주기 등 궂은일을 앞장서서 하곤 했다. 그렇게 늘 그 자리에 있던 준혁이었는데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주변 활동가들이 수소문하게 되었다. 그래서 듣게 된 비보가 맹장 파열 복막염으로 숨졌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 없어 연락이 닿은 친척들에 의해 빈소조차 차리지 못하고 유골이 뿌려졌다는 것이었다. 맹장 파열이라니. 빠르게 병원으로 달려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다가 가난했던 준혁에게 병원비가 ‘넘지 못할 문턱’이었다고 생각하니, 속 모르고 든 생각이 미안하고 미안해서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준혁의 삶이 병원비 앞에서 지워졌다. 아마 준혁뿐만이 아닐 것이다. 주민센터에서 수급신청을 거절당해도 ‘끽소리’ 못 하고 돌아설 것이고, 장애등급심사센터에서 등급 외 판정으로 모든 복지제도에서 쫓겨나도 ‘끽소리’ 못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삶은 방구석으로, 시설로, 죽음으로 밀려난다. ‘끽소리’ 못 내고 삶에서 밀려날 것인가, ‘끽소리’라도 내면서 살 것인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역 지하보도 농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농성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더이상 죽을 수 없다’는 간절한 외침이었고, 잘못된 제도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곡소리였다.

농성이 계속되자 함께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끽소리’도 점점 커져 대통령도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공약으로 걸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약이 이행되지 않아 어느덧 농성은 3년을 넘어섰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요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했던 활동들, 집회와 거리 행진, 기자회견 등의 정치 활동에 대해 ‘도로교통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을 선고하며, 오히려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원하는 것은 공공질서인가, 아니면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인가.

장애운동의 활동가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진정성을 다하여 활동하면서 가진 꿈은 그렇게 대단한 꿈이 아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 더 나아가서 이 사회의 자기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사회의 약자라고 낙인된 사람들, 이 사람들도 자기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억울한 사람들의 ‘끽소리’를 듣기보다는 벌금으로 입을 틀어막기 바쁜 이 답답한 정권에게 더 큰 소리로 화답하자.

‘함께 소리치자!’ 우리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고.

그리고 차별 없는 세상으로 가는 ‘그린라이트를 켜자!’

19일 오후 3시, 서울특별시청 다목적홀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하는 후원콘서트 ‘2015 함께 소리쳐-그린라이트를 켜라!’에 많이 와주십사 부탁드린다. 콘서트 후원금은 장애인운동을 탄압하는 벌금을 해소하는 데 쓰인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socialfunch.org/shout1219.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