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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존엄할 수 없는 홈리스 / 이동현

등록 2015-12-17 19:08

주상이 형이 죽었다.

홈리스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출내기 때 만난 당사자 활동가다. 세살 차이인데다 의욕적이고 엉뚱해서 웃을 일이 많았다. 펜스가 쳐진 개발지역에서 새벽 내 같이 고물을 줍다 잠들어버려 경비 아저씨한테 혼이 난 적도 있다. 뉴타운 미아 6구역 빈민현장 활동 때 형은 대학생들과 함께 몸짓 공연을 하다 따라 하기 어려웠는지 혼자 막춤을 춰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그런 형이 활동을 떠난 건 2009년이 저물 무렵이었다. 우리는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거리행진을 하고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으나 같이 움직이던 단체들이 몇몇 해산하기 시작했고, 이를 핑계로 나 역시 사람들을 부추겨 근처 밥집으로 들어섰다. 형은 어떻게 끝나지도 않은 행진을 이탈하느냐며, 그게 운동이냐며 화를 내고 뛰쳐나갔다. 그 후로 형은 더 이상 활동에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전 홈리스 추모제를 준비하기 위해 무연고 사망자 공고문을 열람하던 중 형이 세상을 뜬 걸 알게 되었다. ‘무연고 변사자(행려사망자) 공고’가 형이 2011년 5월18일 아침에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음을 알려주었다. 돌아간 지 4년도 더 지났기에 장례를 치를 수도, 올해에 돌아간 홈리스들을 기리는 추모제에 영정을 올릴 수도 없게 되었다. 해마다 동짓날 형과 함께 치른 추모제가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러나 형의 영정은 추모제에 오르지 못한다. 너무도 때이른 죽음이었고, 부고 없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동짓날이면 어김없이 서울역 광장에서는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이 홈리스와 닮았기 때문이다. 2005년 이후 해마다 300명이 넘는 홈리스가 세상을 떠난다. 전체 인구집단의 사망률보다 2배나 높은 수치다. 제일 높은 사망 원인은 손상, 중독, 외인성 질환이다. 의료인들은 죽지 않아도 될 질병으로 죽는 것이라 말한다. 이처럼 홈리스의 죽음은 수명을 소진해 맞는 자연사가 아니다. 삶과 죽음이 그리 멀지 않은 삶을 홈리스들은 살고 있다.

2011년 제정된 ‘노숙인 등 복지법’은 많은 이들에게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현재 ‘노숙인 재활·요양시설’ 운영을 제외한 모든 복지 지원은 지방정부로 책임이 이양돼 있다. 법률이 있든 없든 지방정부의 재정과 의지 여하에 홈리스의 복지 수준은 판가름 난다. 결론은 뻔하다. 사회적 지지 수준이 낮고 당사자의 자기 목소리가 나오기 힘든 홈리스들을 위한 복지는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각 지자체들은 ‘서비스가 있는 곳에 노숙인이 몰린다’는 통념을 신봉하듯 홈리스 복지의 하방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나마 의료급여법이 개정되어 ‘노숙인 1종 의료급여’가 신설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노숙인 등’의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고 건강보험 미가입이거나 6개월 이상 연체된 경우에 한해 적용되며, 비급여는 홈리스 개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등 벽이 높다. 그렇다 보니 ‘노숙인 1종 의료급여’가 작동되는 지역은 서울, 경기, 대구, 부산 4개 지자체에 불과해, 제도 자체가 형해화되고 말았다.

올해 홈리스 추모제에서는 ‘죽음’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방식도 묻고자 한다. 무연고 사체를 해부·교육용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은 정당한가? 무연고 사망자는 장례가 아닌 ‘처리’면 족하고, 생전의 지인들은 부고조차 받을 수 없는 ‘무연고 시체 처리 기준’은 인간의 얼굴을 한 것인가? 가난하게 살다 떠났다고, 연고자가 없는 죽음이라고 생전의 지인들이 애도하고, 위로받을 기회마저 빼앗겨서는 안 된다. 서울역에든, 그가 살던 쪽방촌 게시판에든 부고 한 장 붙었다면, 주상이 형은 충분히 많은 이들의 애도를 받으며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동짓날 밤, 서울역은 무척이나 차갑다. 그러나 홈리스도 무연고자도 인간다운 삶을, 그리고 인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훈기 역시 그 자리에 함께할 것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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