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불안감으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주부, 어린 학생, 동네 아저씨, 직장인 등 자기 일 하기도 바쁜 사람들이었으리라.
당시 경찰은 집회에 나온 시민들을 진압 대상으로 보았고, 수많은 시민이 경찰의 폭력진압에 쓰러졌다. 현장은 아비규환, 사냥꾼에 포위되어 쫓기는 짐승들처럼 방패와 곤봉을 들고 쫓아오는 경찰을 피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뛰어가는 사람들, 그렇게 시민들은 흩어졌다.
한국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이었던 나는 시민들이 구타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시민사회 활동가 100여명과 함께 ‘눕자 행동단’을 구성하고 비폭력을 외치며 연행당할 각오로 경찰의 방패 앞에 누웠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 지휘관의 “밟아”라는 명령에 찰나의 주저함도 없이 우리를 방패로 찍고 곤봉으로 내리치며 밟고 지나갔다.
2015년, 광장에 또 시민들이 모였다. 노동법 개정 반대,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 빈곤문제 해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남북관계 개선, 청년 일자리 창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신규원전 건설 반대, 의료·철도·물 민영화 반대, 공공의료 확충!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국민들이 제발 좀 살게 해달라며 광장에 모여 외친 이야기들이다. 종합하면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우리 사회 ‘을’들의 어려운 현실을 경청하고 개선해줄 것을 요구한 13만 민초들의 민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것이 지난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다.
2008년의 기억이 생생했던 나는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걱정과 책임감으로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그때는 시민단체 대표였지만 지금은 국회의원 신분이기 때문에 경찰에 좀더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났음에도 경찰은 여전히 시민들을 사회 불만 세력으로 규정하고 버스로 벽을 쌓았다. 더 나아가 차벽 바로 앞에 선 70살 노구의 농민 백남기님을 향해 화재 진압시 사용하는 압력보다 더 강력한 물대포를 조준사격했다. 농민은 현재 의식불명 상태고 정부는 한마디 위로와 걱정도 없다.
권위적이고 부패하고 반인권적이었던 과거 이미지를 탈피하고 시민들의 친근한 벗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경찰은 ‘포돌이 포순이’ 캐릭터를 도입하고 심지어 경찰버스에 유명 개그맨의 얼굴까지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처럼 사람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이며 고귀한 생명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두 눈 뜨고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물대포를 쏘아대는 정부에 묻는다. 대한민국의 경찰은 일시적으로 한 정부에 충성하는 조직이 아니라 내내 국민에게 봉사는 경찰이어야 하지 않는가? 경찰의 과도한 방어와 과잉 진압이 집회문화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12월5일,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는 범국민 대회가 열렸다. 시민사회·종교계·정치계는 경찰에 평화집회가 될 수 있도록 차벽을 설치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서울광장 집회부터 거리행진, 대학로 마무리 집회까지, 충돌은 어디에도 없었다. 평화시위는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경찰은 시민들이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시위대의 안전을 보장해주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찰에 요구한다. 집회에 나서는 시민들은 제압해야 할 적이 아니라 당신들이 24시간 보호해야 할 국민임을 한시도 잊지 마라. 그리고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은 성탄절을 슬픔 속에 맞이하고 있을 테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이라면 성탄절 전에 최소한 사과부터 해야 마땅하다.
이학영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전 와이엠시에이연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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