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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호주에 ‘헬조선’ 이식하는 한인사회 / 이용규

등록 2015-12-23 18:53

나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외국인 노동자’다. 사람들이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를 국가를 버린 사람들이라고 매몰차게 비난할 때, 왜들 저러나 웃어넘기곤 했다. 그런데 막상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보니 영락없는 ‘외노자’다.

호주에 온 건 미래를 꿈꾸기가 힘들어서였다. 2년 넘게 박봉에 쪼들리며 열심히 살았다. 나이는 차고, 결혼은 해야 했고, 월세 보증금이라도 마련하고 싶었다. 쥘 수 있는 돈 자체가 모자랐다. 이직이나 진학은 예상 비용이 컸다. 더 늦기 전에 기회라도 찾아보자 마음먹었다. 당시만 해도 ‘헬조선’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난 ‘탈조선’의 첫삽을 뜨게 된 거다.

호주 한인들의 삶은 팍팍했다. 특히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건너온 20~30대 워홀러들은 사정이 대개 비슷하다. 워홀러들은 돈이 필요하다. 대부분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와서 구직활동부터 한다. 호주의 최저임금은 한국의 3배 수준이다. 그러나 현실은 유학원의 홍보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최저임금을 보장받는 일자리는 별 따기다. 한국인이 고용주인 ‘한인잡’ 대부분은 최저임금을 밑돈다.

‘한국인을 등쳐 먹는 한국인’이라는 비아냥은 워홀러들에겐 상식이다. 한인잡을 뛰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각오해야 한다. 시급 1만7천원(1달러 1천원 기준)의 최저임금은 한인 고용주를 거치면 1만~1만5천원으로 깎인다. 탈세를 노려 임금은 현금으로 지급한다. 임금체불은 물론이다. 한인이 많은 청소 분야는 노동자에게 사업자등록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면 시급은 최저임금을 밑돌면서도 수익의 세금은 노동자가 내야 한다.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일부 한인은 법에서 정한 수용 한도를 초과해 사람을 들인다. 많게는 2배다. 화장실이 한두개인 집에 10~15명이 머무르기도 한다. 이러한 ‘닭장 셰어’는 비자 연장을 위해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워홀러가 많은 외곽지역에 더 많다. 운영주는 일자리 중개를 겸하면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소득의 일부도 떼어간다. 한인이 중개하는 농장은 시급제가 아니라 능력제가 다수다. 하루 12시간씩 일해도 초과근로수당은커녕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는 모습은 외국인 노동자인 한국인을 이용하는 다른 한인의 모습과 겹친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한국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불공정한 사회라는 인식에서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회를 찾아 온 탈조선자들은 해외에서 제2의 헬조선을 목격한다. 자국에 보내는 냉소와 자조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구습과 문화를 탈피하지 못한 채 되레 헬조선을 이식하고 있다.

이용규 오스트레일리아 탬워스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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