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투구, 2015년 세밑이다. 박근혜 정부의 퇴행은 멈출 줄 모르고 그 정도는 날로 더해만 가는데, 선거를 넉달 앞둔 야권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탈당, 분당, 신당 창당이 신문 지면을 뒤덮고 있다. 유명 정치인들과 진보 운동가들 각자가 야권 재편을 주장하며 여기저기서 자신들 중심의 창당을 외치고 있다. 새누리당의 역행과 독주를 목놓아 비판하며 정권교체를 외치지만, 지금 보이는 소위 범야권의 행태는 새누리당의 장기 집권을 물밑에서 도와주는, 연기파 조연들의 깨알 연기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의 야권 난립이 유권자들로부터 점점 더 외면받는 건 유권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는 정책 하나 없이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인물로만 승부를 걸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이 그렇고, 새정치연합이 싫다고 이탈한 이들이 만들 신당이 그렇고, 진보 정당들이 그렇다. 이러다 내년 4월이 되면 후보 단일화를 한다며 반새누리당 후보들이 여론조사를 통해 대항마 한명을 추리는 작업을 할 테고, 경쟁력을 무기로 결국 또 그 밥에 그 나물이 단일 후보가 될 것이다. 결국 한국 사회는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든 그 반대편의 단일 후보가 당선되든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직업 정치인들이 민심 읽는 법을 이리도 모를 줄이야. 정책 없이 인물에 열광하는 후진적인 정치는 이제 끝나야 한다.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헬조선 한국에서 국민들은 제발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의 수만 합쳐도 전체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데, 정권교체를 외치는 야권 정치인들은 이들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채 자기 사람 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어떻게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것인가?
엉망진창인 현재의 야권 지형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방법으로 가장 현실적인 것은 당원 경선일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니 안심번호제니 하는 것들은 울부짖는 국민의 목소리를 읽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빌미로 인물 선호도를 조사하는 것에 다름없다.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뿐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까지 오로지 당원만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경선 룰을 갖는 범야권 빅텐트를 만들어야 한다. 혹자는 과거 통합진보당 사태를 떠올리며 당원 경선 과정에서 불법이 판칠 것이라고 하는데, 현행 선거법에 따라 불법을 다스리면 될 일이다. 더 중요하게는, 결국 본선도 해당 지역구 유권자들의 숫자 싸움이 아니던가.
이러한 당원 경선 구조가 마련된다면, 그리고 경선 직전까지 모든 예비 후보들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놓고 당원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제도적으로 주어진다면, 지리멸렬한 야권에 선거 승리의 새싹이 돋아날 수 있을 것이다. 전략공천이니 계파 챙기기니 하는 잡음은 원천적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들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것이다. 경선에 활력이 생기는 것이다. 지속적인 당원 간의 소통 공간에서 당원들의 정치의식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나치를 경험했던 독일이 패전 이후 짧은 시간에 지금과 같은 정치 선진국으로 질적 변화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정당과 시민들 간의 상시적인 소통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용산참사, 쌍용차, 4대강, 유우성, 세월호, 국정교과서, 백남기를 경험하고도 내년 선거가 새누리당 승리로 끝난다면,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야권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었다면, 우리 후세들이 2016년 한국의 정치인과 유권자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그것이 참으로 두렵고 부끄럽다.
염광희 베를린자유대학 정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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