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강원도 철원에서 살고 있는 50대 농부입니다. 제 직업이 ‘농부’라고 해도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소개할 말이 마땅치 않습니다. 자식같이 키우던 소들을 뒤로한 채 폐업신고를 한 지 몇해가 지나고 말 그대로 입에 풀칠이라도 해보겠다고 작은 밭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계 수단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암 때문입니다. 저는 림프종 중에서도 아주 희귀한 ‘외투세포림프종’으로 투병하고 있습니다. 투병 기간이 5년이지만 저는 그사이에 암이 세번이나 재발했습니다.
암 진단을 받고 몇달간 독한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첫 치료의 성과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1년 만에 재발했습니다. 제 몸 안에 다시 암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절망’이란 단어를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은 저에게 자주 찾아오더군요.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고서도 재발하여 다른 사람의 조혈모세포를 또다시 이식했지만 결국 올해 다시 림프종이 재발했습니다.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말에 저는 산에서 한달을 기거하며 조용히 죽음을 기다려 왔습니다.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하려면 계속해서 독한 항암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입원과 퇴원, 독성 항암치료와 수술을 반복하던 저는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지금 손과 발 저림이 심해 거동이 불편한 상태입니다. 구토는 언제부턴가 일상이 되었고 밥도 몇달째 먹지 못하는 등 비참한 투병생활이 지속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독한 항암제로 인해 신장의 기능이 절반 이상 떨어져, 항암제뿐 아니라 다른 약들도 매우 제한적으로만 복용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나날이 지속되었습니다. 이제는 죽음만큼이나 독성 항암치료가 싫습니다. 병원에서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들도 여럿 본 터라, 더 이상은 항암치료를 견뎌낼 몸도 마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하늘이 들어준 것일까요? 지난 9월부터 저는 재발한 외투세포림프종에 치료 효과가 있는 임브루비카라는 신약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제 몸 안에는 암 덩어리가 있지만, 빠르게 크기가 줄어드는 효과를 보고 있어 저와 가족은 다시 한번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약을 복용할 수 있을 만큼은 제 신장 기능이 유지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웬만큼 경제력이 있지 않고서는 신약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신약이 나왔다는 소식은 오히려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저 또한 이렇게 효과 좋은 신약인데, 언제까지 치료를 지원받을 수 있을지 몰라 불안함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신문에는 암 보장성 확대를 위해 나라에서 여러 가지로 애쓴다고 하는데 저희같이 희귀한 암을 앓는 환자들에게는 전혀 실감이 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선고를 받으며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림프종 환자들을 위해 하루빨리 신약이 보험 급여에 적용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저처럼 다른 외투세포림프종 환자들도, 독성 항암제로 몸이 망가지기 전에 하루빨리 이 신약의 혜택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디 신약의 급여 소식이 곧 전해져 우리 환자들이 치료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김순규 강원도 철원군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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