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15일 우리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았다. 이에 대해 세 가지 표현 방식이 존재한다. 광복, 해방, 독립이다. 우선 광복이란 의미부터 생각해보자. 광복은 빛을 회복했다, 빛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았는데 왜 복국(復國)이라 하지 않고 광복이라 했을까. 나라를 되찾는 건 단순히 잃어버린 국토만이 아니라 민족과 역사를 함께 되찾게 된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과 역사를 통틀어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빛’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복국’이라 하지 않고 ‘광복’이라 했던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데는 우리 선열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 의사, 열사, 지사들이 국내외에서 붓으로 칼로 총으로, 때로는 몸을 던져서 피와 땀으로 얻어낸 결과이다. 광복이란 용어에는 나라를 되찾은 주체가 우리 민족이라는 강한 자주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러나 해방이란 용어는 다르다. 해방(解放)은 ‘묶어놓고 있다가 풀어줬다’, ‘묶여 있다가 풀려났다’는 뜻이 되므로 주체는 일본이 된다. 따라서 해방은 일본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는 관공서의 공문서에서, 신문의 사설과 칼럼에서, 학교의 강단에서 여기저기서 해방이란 용어가 넘쳐난다.
지난 2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류석춘 연세대 교수의 칼럼을 보면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가 해방된 날이”, “대한민국의 건국은 해방으로부터 시작해”, “미국의 승리 덕분에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됐다” 등 해방이란 용어가 셀 수 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 70주년, 건국 67주년”이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해방 70주년’이라고 자의적으로 바꿨다.
독립이라는 용어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예컨대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있다. 우리는 1776년 독립한 미국과 같은 신생 독립국가가 아니다. 반만년 전에 독립국가 고조선을 건국하여 면면히 이어왔다. 35년 동안 나라를 잃었다가 다시 되찾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은 당연히 독립기념관이 아닌 광복기념관이 되어야 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선열들도 독립이라는 용어를 즐겨 썼다. 그러나 그때는 국난기 아닌가. 나라가 광복된 지금은 좀 더 정제된 용어, 더욱 적합한 용어를 사용해야 옳다.
연초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민족의 긍지와 자긍심 고취, 통일로 가는 이정표 정립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국민화합대축제’가 열렸다. 기념주화를 만들었고 특별사면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보내면서 그동안 추진해온 기념행사가 과연 본래의 목표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해방이란 용어의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독립기념관을 광복기념관으로 바꾸었다면 기념사업추진위가 애초에 내걸었던 민족의 긍지와 자긍심 고취라는 목표에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았을까.
광복 70년이 저물어간다. 빛을 회복했다는 광복이라는 자주적인 용어가 우리 사회에 정착될 날은 언제인가. 민족의 긍지와 자긍심에 상처를 주는 해방이라는 용어는 언제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인가. 30년 후 광복 10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는 제발 얼굴을 내밀지 말아야 할 텐데, 그렇게 될까봐 두렵다.
심백강 역사학 박사, 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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