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경선 빅텐트’에 대한 재반론
김지우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한국의 정치 현실을 바라보며 느낀 것들을 말씀드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일은 한국에 비해 정치가 매우 안정된 것으로 평가받는데, 그 원인은 독일 시민들의 생각이 정치에 매우 정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본 한국 정치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야권이 힘을 못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은 민의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운 외적 조건에 있습니다.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론입니다. 국회의원 의석수가 민심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지역구 중심 승자독식 선거제도, 국민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정당 관련법, 양비론과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언론의 행태 등이 그것입니다. 국민들은 삶이 버겁다고 아우성인데, 이런 밑바닥 민심이 정치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정치와 관련한 구조적인 조건이 매우 뒤틀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이유는 정당 내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원들의 목소리가 상시적으로 정당 의사 결정에 반영되지 않는 정당 운영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대부분 리더 몇 사람과 그를 둘러싼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좌우됩니다. 과거 독재세력과 싸울 때는 유효했을지 모르겠지만, 민주화가 진전된 지금까지도 그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야당 스스로 힘을 약하게 만든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당의 사전적 정의는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이 직업 정치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당은 정책 결정과 후보자 선출에 있어 당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당 지도부에 의해 결정되고 있습니다. 당비 내며 시간 바쳐 당원으로 활동하겠다고 다짐한 이들이 참여할 공간 자체가 없습니다. 한국 정당에서 당원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야권의 분열상을 잘 살펴보십시오. 당대표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당원들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인사를 지역구 후보로 정합니다. 이에 반발하는 세력들은 탈당해 새로운 정당을 만듭니다. 새 인물을 수혈한다는 명목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인사를 ‘영입’해서 경쟁 지역에 ‘내려’보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당원들의 의사와는 무관합니다. 그러니 당원들은 당에 대한 소속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당원의 생각보다 여론조사에 민감한 국회의원이나 당 지도부는 당원들을 더욱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다 선거가 임박하면 그저 동원의 대상으로 당원을 활용합니다. ‘사람들’은 떠나고 직업 정치꾼만 남아 있는 한국의 정당입니다. 이 같은 한국 정당의 행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당원 위에 군림하는 권위적인 정당 운영’입니다.
한국 사회가 점점 피곤하고 양극단으로 치닫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학을 공부하는 제가 보기에는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당이 당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상시적인 통로가 마련된다면, 해고 노동자들이 건물 옥상에서 추운 겨울을 날 필요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집이 아닌 광화문에서 노숙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 사회가 안정된 것은 정치인들이 당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원들의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하면 그 정치인은 다음 선거에 출마할 수 없습니다. 경선에서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즉, 당이 당원을 들러리가 아닌 진정한 당의 주인으로 대접할 때 ‘사람들’이 넘치는 뿌리가 튼튼한 당으로 성장할 수 있고, 사회도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 운영에서 당원 참여를 이끌어내는 플랫폼이 마련된다면, 이제 남은 하나의 과제는 당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입니다. 우리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가려운 곳을 긁어줄 대표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서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이유입니다.
염광희 베를린자유대학 정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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