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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호모 사피엔스여, 부디 원숭이만 같아라 / 최종욱

등록 2016-01-04 18:49수정 2016-01-04 21:35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우리 동물원 침팬지는 정말 사람 같다. 모든 사람을 분류해서 알아보고 평가한다. 내가 가면 철창에 척 달라붙어 반갑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관람객들이 가면 무심코 하던 일을 계속한다. 주로 먼 산을 보고 일광욕을 하거나 과일을 씹거나 철창에 당근이나 바나나를 올려놓는 주술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를 보면 인간에게서와 같은 측은지심이 늘 발동한다. 들어가서 같이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인다. 그래서 침팬지 앞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짧게나마 눈 대화를 나누고 주머니 속에 먹을 것을 담아다 손으로 건네주거나 던져주기를 반복한다. 그는 그냥 내 친구다! 요즘 거울실험 프로젝트가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된 모양이다.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등 동물 중에서 인간과 같은 부류로 구분되는 소위 비인간인격체가 대상이다.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처럼 감정을 가진 동물로 대우를 해야 하고 그걸 증명해서 보여주겠다는 실험이다.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조차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래 그들을 바라본 처지에선 당연히 사람처럼 감정 상하지 않게 잘 대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를 인식하는 게 거울실험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래야 인간과 같은 자아의식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대부분 성공한 실험이지만 캠페인적인 의미에서 우리나라 유인원들도 꼭 자아찾기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우리 침팬지도 당장 실험하고 싶었으나 아직 마땅한 큰 거울을 못 찾고 있다.

몇해 전 우리나라에도 <미스터 고>란 영화가 나왔고 <킹콩>영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고릴라 인형의 푸근함은 누구나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생일 선물로 고릴라 인형을 받고 어떤 인형을 받았을 때보다 기뻐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고릴라 이미지는 우악스러우면서도 멋이 있고 친근하다. 마치 <레옹>에서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 킬러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고릴라를 초식동물로 인식하는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 하지만 고릴라는 완전 초식이다. 침팬지가 가끔 육식을 하는 것과도 비교된다. 놓치기 쉽지만 난 <킹콩>에서 킹콩이 쉴 때 대나무를 우적우적 씹는 장면이 참 인상 깊었다. <미스터 고>에서도 집에 있는 화분을 몽땅 먹어치우는 코믹한 장면이 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완전 채식동물에 힘은 누구보다 세지만 조용히 산속에 은둔하며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는 동물이 바로 고릴라다. 이들이 인간의 밀렵과 전쟁 탓에 이제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았다.

‘숲속의 사람’. 바로 오랑우탄의 뜻이다. 예전부터 원주민들은 이미 오랑우탄을 사람이라 불렀다. 그래! 그들은 아무리 봐도 동물이라 부를 수가 없다. 사육사에게 매달려 칭얼대는 어린 오랑우탄을 안아본 적이 있는데 영락없이 아기였다. 타이에 가서 옷을 입은 큰 오랑우탄과 다정히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도 친근한 외국 아이들과 찍은 사진처럼 자연스럽다. 나이 든 수컷은 남성 호르몬이 발달하여 우락부락하게 변하지만 암컷이나 새끼는 머리카락은 많지 않지만 영락없이 눈이 크고 귀여운 사람이다. 유명한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처럼 오랑우탄만을 평생 연구한 비루테 갈디카스 같은 여성 학자도 있다. 침팬지나 고릴라만큼 대중적인 이미지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지만 언제가 반드시 조명되어야 할 다음 동물, 아니 인격체가 바로 오랑우탄임에는 틀림없다.

주요 3종류 유인원뿐만 아니라 구대륙 원숭이들이라 부르는 아프리카의 개코원숭이나 일본원숭이도 집단으로 가족을 이루고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적인(?) 사회를 형성한다. 마치 인간처럼 집단 간에 전쟁도 심심치 않게 일으키지만, 한겨울엔 꼭 뭉쳐 추위를 이겨내고 집단으로 새끼들을 보호하고 양육하기도 한다. 수컷은 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 전쟁 때 맨 먼저 뛰쳐나가야 하고 새끼나 암컷을 배려하는 덕도 갖추어야 한다. 무리가 굶지 않게 끊임없이 고민하고 모험을 찾아 나서야 하고 자기의 약함을 함부로 드러내서도 안 된다. 요즘 인간 지도자들에게 우리가 바라는 간절한 덕목이기도 하다. 원숭이처럼만 해도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건 따 놓은 당상이다.

신대륙원숭이, 원시원숭이라 부르는 작은 원숭이들은 하등 취급을 하지만, 사실 큰 원숭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안경원숭이처럼 좀더 단독생활을 좋아하거나 여우원숭이처럼 마다가스카르라는 한정된 섬 지역에 살아남아 좀더 순박한 면이 강할 뿐이다. 이들 모든 원숭이를 관통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모성애’라는 것이다. 보통 진화가 덜 된 원숭이라 부른 신대륙원숭이 중에 ‘다람쥐원숭이’가 있다. 다람쥐처럼 조그맣게 생긴 원숭이이다. 이 원숭이가 새끼를 낳은 지 하루 만에 새끼가 죽었다. 그런 일들이야 비일비재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가슴에 안고 다니는 새끼 사체를 빼앗아버렸다. 그런데 그 후 어미 원숭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일체의 움직임마저 포기한 채 일주일 동안 망부석처럼 구석에만 앉아 있다가 죽고 말았다. 그가 자식 잃은 깊은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올해는 병신년(丙申年) 원숭이해다. 장애를 비하적으로 이르는 표현과 소리가 같아 역설적으로 나 자신을 비롯해 우리 인간이 집단적으로 앓고 있는 ‘생각의 병’을 떠올리게 한다. 동물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내재된 폭력성이 있고 욕심도 있다. 그러나 어느 동물도 인간만큼은 아니다. 인간은 ‘에고’가 너무 강하여 인간 자신들, 모든 동물들 심지어 보금자리인 지구까지 파괴하지 못해 안달인 이상한 족속이다. 영화 <혹성탈출>과 달리, 인격체라고 불리는 유인원들이 왜 다른 동물들에게 파괴적이지 않은지는 우리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인간 말고 모든 동물들이 가진 절제의 미학, 자연에 대한 순응이 바로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사람)로 거듭나는 해답임은 99.999…%(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 종수)다.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진료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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