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청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세상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아십니까?
우리는 단지 살기 힘들기에 ‘헬조선’을 부르짖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 진정한 정의와, 희망과, 미래가 없기 때문에 헬조선을 말합니다. 한국 경제가 어렵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방 후 수십년간 정부 지원을 통한 대기업의 가파른 성장세를 붙잡고 헐레벌떡 달려온 이 나라의 경제가 이제야 숨 고르기를 좀 하겠다는데,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청년 실업도, 고용 불안정도 세계적인 추세라고 합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이해는 일방적입니까? 왜 우리가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이 나라가 불의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낍니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대통령이 입법부에 간섭하고 공기업에 자기 사람을 심으며 적폐를 쌓고 있습니다. 가장 공정해야 할 사법기관의 전관예우는 끊이질 않고, 대기업들은 수백조를 쌓아놓고 규제 철폐만 외치고 있으며, 이제는 비정규직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겠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이 나라 군대가 여전히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곳이고 썩어문드러진 곳이라는 것을 압니다. 낙수효과를 운운하며 반백년을 지나왔지만 빈부격차는 늘어났습니다. 이제 몇십년 후면 국민연금은 고갈된다지요.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노인인구는 늘어만 가는데 그들을 부양해야 할 우리들은 일자리조차 없습니다. 이 나라를 우리가 어떻게, 대체 왜 감당해야 합니까?
대통령께서는 최근 대승적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거꾸로 제가 외치고 싶습니다. 멀고 넓게 대승적으로 본다면 나에겐 무엇이 있습니까? 국가가 우릴 돌보지 않는데 왜 우리가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까? 희생을 통한 대승적 결단에 짓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있어야 합니까? 소수를 위해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어떻게 한 국가의 정의입니까? 그게 당신들의 애국입니까?
저는 6·25도 겪지 못했고 구제금융 사태도 생경할 정도로 어립니다. 하지만 애국심이란, 국가에 대한 희생이란 강요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국가가 정의롭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평하다면 저는 맨몸으로 돌이라도 들고 내 나라를 지키려고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내 나라’, ‘우리의 나라’는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우리가 태어나 겪은 어느 경험에서 이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기를 수 있었습니까?
위안부 협상이, 그들의 표현을 쓰자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타결되었습니다. 또 정부는 ‘대승적 견지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이해해달라고 합니다. 대체 무슨 미래를 말하는 겁니까. 이제는 두렵습니다. 이런 일들에 어떤 분노도 하지 않는 제가. 이런 일들이 당연하게 일어나는 이 나라가. 다음 대승적 견지의 희생자는 대체 누구입니까? 분명 여기는 북한처럼 불길이 타오르고 재와 먼지가 흩날리는 지옥은 아닙니다. 그러나 천천히, 그리고 차갑게 발목을 잡고 늪으로 끌어내리는 지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헬조선을 부르짖습니다.
이창훈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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