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답할 것이다. <오늘>이라고. 이정향 감독의 <오늘>은 용서에 관한 영화다. 약혼자를 잃은 주인공의 여정과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여고생의 아픔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소녀를 연기한 남지현을 보면서, 관객이 3명밖에 없는 영화관에서 모두 흐느꼈던 기억이 난다. 극 중 지민이라는 소녀는 잘나가는 판사인 아버지에게 매일같이 맞는다.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전혀 죄책감 없는 아버지, 환경에 순응하여 딸에게 잘못을 돌리고 나 몰라라 하는 어머니를 둔 가정에서 지민은 어서 죽고 싶다며 자신의 지병을 치료하지 않는다.
자산 20억원 이상이면 금수저, 5000만원 미만이면 흙수저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직장을 가지며 더 오래 산다. 하지만 과연 수저의 색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뿐일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어릴 때 신체적·정신적·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들의 정신 건강과 경제적 수준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낮았고, 그들의 자녀들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즉 자녀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애정과 보살핌이다. 돈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수저의 색은 ‘사랑’에 의해 결정된다.
최근 아동학대 사건의 양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신체적·정신적 폭력, 성폭행, 심지어 살인까지, 죄 없는 아이들은 무지하고 무지막지한 어른들의 손에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시들었다. 어떤 종의 씨앗을 어떤 날씨 아래 어떤 방식으로 키우느냐에 따라 그 꽃의 색과 향기는 다르다. 우리가 그 꽃들을 각자의 환경 아래 두는 것은 그 꽃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아름다움을 가지길 원해서이지 마음대로 꺾고 짓밟도록 허용한 것은 아니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과 국가 등은 아동의 보호, 양육, 육성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아동은 정당하게 반항할 힘과 정신을 갖추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 국민과 국가가 꼭 지켜주어야 한다. 첫째로 우리 사회 전체가 아동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아동은 부모의 소유라는 인식이 강하다.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왔지만 자녀는 엄연히 부모와 다른 인격체이고 더욱 존중해야 하는 대상이다. 주위의 아동학대를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자신의 인식을 다듬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국가는 아동학대를 더욱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외국은 아동학대 조기 발견, 즉각 격리조처, 친권 박탈 등 예방 시스템뿐만 아니라, 실형 선고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강력하다. 영국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으면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받으나, 우리나라는 아이를 죽인 할머니가 겨우 6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셋째, 아동복지에 힘써야 한다. 아동수당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정부 차원의 여러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아동의 건강을 증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에게는 질 좋은 상담과 교육을 성인이 되기 전까지 제공하는 것 또한 정부가 할 일이다.
모든 아이는 귀중한 우리의 미래다. 더 이상 이 글을 읽고 그대로 잊는 야만적인 행동을 하지 말자. 학대 속에서 떨고 있는 아이에게 손 내밀어 세상의 빛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몫이다.
배재경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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