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선악을 판별하여 벌을 주는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뜨고 있다. 그것도 한쪽 눈만 뜨고 있다.
지난 1월13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는 2015년 2월28일 동양시멘트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한 선고공판이 있었다. 이 해고노동자들은 중부고용노동청 태백지청으로부터 동양시멘트와의 묵시적 근로관계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동양시멘트는 이를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도급업체와의 계약 해지라는 방식으로 101명의 노동자를 집단해고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동양시멘트를 상대로 해고 철회와 정규직 복직 이행을 촉구하며 투쟁에 돌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회사 쪽 관리자들과 다툼이 있었고, 13명의 해고노동자가 기소되어 법정에 섰다.
법원은 지부장에게 징역 1년6월(구형과 동일), 수석부지부장에게 징역 1년(구형 1년6월), 총무차장에게 징역 10월(구형 1년), 조직국장 및 3명의 조직부에게 각 징역 6월(구형과 동일)을 선고하였다. 노동위원회조차 인정한 부당해고의 철회를 요구하며 해고 전 일했던 광구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다가, 관리직 직원들이 노조 현수막을 훼손한 것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행위, 매각 실사단에 노조 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비폭력 선전전을 진행한 것에 대한 처벌이라면 납득하겠는가. 심지어 검사가 같은 혐의로 기소하고 같은 양형을 구형했음에도,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회사 요구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한 이들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면 믿겠는가. 상식뿐 아니라 과연 법과 정의가 존재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판결이었다.
이번 판결로 가장 이득을 본 쪽은 당연히 동양시멘트와 삼표그룹이다.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그룹은 이미 행정기관에서 판정한 묵시적 근로관계 인정과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판정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합원들을 회유하여 노조를 탈퇴시키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게 만든 것이다. 이번 판결의 힘을 빌려 삼표그룹과 동양시멘트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노동조합의 활동을 탄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응당 이행하고 지급해야 할 책임으로부터 일부 면죄부를 받게 되었다.
노동조합을 탈퇴하지 않고 해고 철회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삼표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 이마빌딩 앞에서 노숙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상경한 지도 어느덧 200일이 다 되어 간다. 이들에게 사법부의 존재는 무엇일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법과 정의를 구현하는 정의의 여신일까, 아니면 한쪽 눈을 뜨고 강자의 편에 서 있는 편협한 집행관일까.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일하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을 사법부가 앞장서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있다. 사법부가 진정으로 법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부디 해고된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돌아봐주길 바란다.
조한경 민주노총강원지역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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