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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맘상모, 흑인 인권운동의 슬픈 오마주 / 구본기

등록 2016-02-03 18:43

1월29일 새벽, 임대인이 고용한 수십명의 용역업체 직원이 강제집행을 위해 서울의 파리바게뜨 효자동점을 덮쳤다. 그들은 망치로 문과 창문을 부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육탄방어를 벌이는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 임차상인들로 구성된 모임) 회원들을 끄집어내어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모두 합법이라는 기치 아래 이루어지는 행위였다. 임차상인들은 절규했고, 울었다. 또한 다쳤다.

임대인이 가진 재산(건물 및 토지 소유권, 즉 월세 등으로 치환되는 가치)과 임차인이 가진 재산(영업시설 및 인지도, 브랜드 등 이른바 권리금으로 치환되는 유·무형의 가치)의 충돌은 언제나 임차인만을 아프게 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두 재산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임대인은 임대차 계약 5년 후에 월세를 얼마든지(가령 1만%) 올릴 수 있다. 임차인은 임대인이 임대차 계약 6년차 되는 해를 맞아 “나가라!”고 하면 그 명령 하나로 애써 일군 가게를 접어야 한다. 임대인은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하기 위해 데려온 신규 임차인과의 계약을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 재건축은 임차인을 내쫓기 위한 아주 훌륭한 구실이 된다.

한 건축물 내에서 수개의 재산이 서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오래된 갈등의 핵심이라면, 과연 임대인(건물주)끼리의 재산권이 충돌할 때에는 어떠할까? 그것이 궁금하여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펼쳐본 적이 있다.

여러 명이 한 건축물을 나누어 소유할 수 있는 집합건물의 경우, ‘그들끼리의 분쟁이 생길 때를 대비하여 그 분쟁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집합건물분쟁조정위원회를 광역 지자체에 두어야 한다. 재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소유자 5분의 4 이상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 재건축에 참가하지 않을 뜻을 밝힌 5분의 1의 소유자는 자기 재산을 다른 소유자에게 시가로 매도할 수 있고, 법원이 불가피성 등을 인정할 경우 1년 이내에 그곳에 머물 수도 있다. 재건축 결의일로부터 2년 이내에 건물 철거공사가 착수되지 않는 경우, 자신의 재산을 시가로 매도했던 전 소유주는, 같은 금액으로 자신의 재산을 되찾아올 수도 있다.

두 법률의 비교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임대인의 재산은 임차인의 재산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임차인은 임대인의 뜻에 의해 재산을 상실해도 괜찮다. 그러나 임대인끼리의 재산은 누구 할 것 없이 서로 소중하기 때문에, 두 재산권이 충돌할 때에는 되도록 평화롭고 공정하게 사건을 마무리해야 한다.

임차인의 것(권리금 등으로 표현되는 재산)이 임대인의 것(월세 따위로 표현되는 재산)에 비해 열등하므로, 임대인의 이익을 위해 임차인의 것이 상실되어도 괜찮다는 선민사상적, 아니 임대인(건물주) 우월주의적 철학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비롯하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등 부동산 관련 법률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이러한 차별을 바로잡지 않는 이상 임대인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가게를 때려부수는 일, 임차인이 울고 다치는 일, 그리하여 결국 임대인이 임차인의 재산을 착복하는 일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임차인의 재산을 임대인의 것과 똑같이 취급해달라!”며 몸을 내던지는 맘상모의 ‘충격적’ 운동은, 1960년대 미국의 흑인인권운동을 그대로 재연하는 ‘평등에 대한’ 슬픈 오마주다.

구본기 구본기재정안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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