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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인간 배아 편집’, 합의가 시급하다 / 전방욱

등록 2016-02-10 19:03

최근 영국에서는 특정 유전자가 임신 초기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배아 편집 실험을 승인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4월에는 중국 학자들이 인간 배아를 편집하는 최초의 실험을 감행했다. 이른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라고 하는 핵산분해효소를 적용하는 연구들이다.

효율적인 유전체 편집을 위해서 절단하고자 하는 부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절단하는 효율적인 유전체 편집 도구가 개발된 지 20년이 채 안 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핵산분해효소들이 있었으나, 디자인하기가 어렵고, 가격도 비싸서 실용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엔 자르고 싶은 유전자 부분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정확하게 인도하는 아르엔에이(RNA)를 디자인해서 시약공급회사에 보내면 65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택배로 배송해준다. 2014년 한 해에만 전세계적으로 2만 키트가량이 판매되었으며, 관련 논문들은 매년 1000여편씩 생산되고 있다. 유전자 편집을 하는 세계 전역의 연구실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영국의 경우에서처럼 불임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과학지식을 얻는 것부터 유전자 치료, 유전자변형식품의 제조, 해충 유전자의 축출, 생물무기 제조, 인간 개량 등까지 적용의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기술은 동물배아와 인간의 모든 체세포에 적용되었으며, 올 1월만 해도 자폐증 원숭이, 개 유전자의 편집이 보고되었다. 이처럼 엄청난 위력을 지닌 편집 도구가 거의 아무런 통제 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기술 자체를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기술을 적용하는 대상과 방법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초 인간 유전체 편집에 관한 국제정상회담이 열렸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말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전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기술영향평가를 실시하였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서는 배아, 난자, 정자 및 태아에 대해 유전자 치료를 실시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42조3항)하고 있다. 그러나 난임치료법 및 피임기술의 개발을 위한 연구, 근이영양증 등 희귀·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에서는 잔여배아 사용이 가능하다. 이미 근이영양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희귀·난치병의 연구에 체세포를 대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기술이 상당 부분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배아에 대한 연구도 현실화될 것이다.

인간 배아의 유전체를 변형시키는 것은 상당한 윤리적·법적·사회적 함의가 있다. 이는 유전자 편집이 미래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생식세포 개입이며, 현재의 유전학적 지식으로는 예측하지 못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전자 편집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미래 세대의 동의는 정작 받지 못할뿐더러, 이를 허용할 경우 인간 배아 유전체의 변형을 허가 또는 금지할 기준이 불명확해진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10월 심각한 미토콘드리아 이상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미 미토콘드리아 기증을 통한 출산을 합법화하였다. 생식세포의 유전자 변형이라는 면에서 미토콘드리아 기증에 의한 출산, 유전자 편집에 의한 출산, 생식복제에 의한 출산 사이의 명확한 차이는 없다. 그러나 이미 미토콘드리아 기증에 의한 출산이 영국에서 합법화되었고, 안전성과 효율성 문제가 해결되면 조만간 유전자 편집에 의한 출산도 합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배아의 지위라는 오래된 쟁점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시행될 가능성이 많다.

인간 배아 편집을 우려하는 외국의 학자들은 전문가와 대중의 의사소통과 토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 배아 편집에 관한 숙의를 통한 법령 정비가 시급하다. 특히 10여년 전 줄기세포 스캔들을 겪은 우리는 실수를 되풀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방욱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한국생명윤리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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