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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낭만은 노동이 될 수 없다 / 김다솜

등록 2016-02-15 20:50수정 2016-02-15 22:04

“애들 다 크고 심심해서 용돈이나 벌려고 여기 나오는 거지. 여기 그런 사람 없어요.” 노동 교육을 하러 나온 노무사를 향해 마트 직원이 외친다.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이다. 나는 한 달간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저 장면이 생각났다. 사람들에게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를 하게 됐다”고 말하면 대다수는 ‘노동’보단 ‘낭만’을 떠올렸다. 스스로도 무급으로 일하면서 노동자성을 부정했다. 나도 드라마 <송곳> 속 마트 직원처럼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여행하러 가는 거야”라고 자기 합리화했다. 무급으로 일하면 그만큼 널널해서 여행 다니기도 좋을 거라 여겼다. 실상은 달랐다. 일주일 중 4일 근무, 3일 휴무.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나눠준 스케줄표에는 하루 근무 시간이 10시간이나 찍혀 있었다. 청소량이 많은 날이면 1~2시간 추가로 일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누적된 피로 때문에 여행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 일하고 받은 돈은 20만원이었다.

20대들의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지원은 식상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해마다 전국 곳곳의 청춘들이 제주도를 찾는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를 자원하는 청춘들의 목표는 대개 숙식을 해결하면서 여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업무는 엄연히 불법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스태프 본인과 사용자 쪽에 있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도 숙박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 봐야 한다. 스태프를 여행자로만 생각하는 태도가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근로계약서 작성은 물론이고 처우까지도 노동법의 테두리 밖에 놓이게 된다. 무급 스태프처럼 단순히 숙식제공만으로 임금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임금 지급의 원칙을 따지면 노동의 대가는 돈으로 치러야 마땅하다. 유급조차 제대로 대가를 받고 일하는 사업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근무시간만큼 금액을 책정해 최저 시급을 적용하는 게 옳다. 그밖에도 노동법에 위반되는 사안은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근무 태만을 이유로 갑자기 잘린다든지, 초과 근무를 한다든지, 심하게는 근무 중에 다치더라도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제주도 내 게스트하우스 노동에 대한 어떤 실태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스트하우스 수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에 그만큼 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스태프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지방노동청에 진정서 한 건 접수되지 않는 것도 노동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데 따른 역설적인 결과다. 일부 게스트하우스 사업자들은 항변한다. 70~80년대 대학생들이 약간의 노동을 제공하고 시골로 무전여행을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게스트하우스 스태프의 노동은 낭만이 될 수 없다. 노동을 사용하는 입장이 수익을 창출해내는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라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정말 금전적·시간적 여유가 넘쳐서 여행만 하려고 여기에 왔는지. 당신이 사용자라면 이득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단지 즐거운 생활을 하고 싶어서 스태프를 들이는 건지 되물어보라.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을 깨우치는 일부터 시작해 불법 게스트하우스 사업자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방법까지 강구해야 한다. 노조 결성도 절실하다. 청년유니온에서 불법 사업장을 고발하는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을 벌였듯 노조를 통해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문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

김다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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