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학교급식은 1953년 한국전쟁 직후 유니세프에서 구호물자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학교급식 제도의 탄생 자체가 자주적이지 않고 교육 차원은 더욱 아니었으며 심지어 구차하기까지 했다.
학교급식은 ‘먹는 문제’이기 때문에, 좀 비약해서 말하면, 관련된 사람을 모든 국민으로 확대할 수 있다. 급식업무 담당자, 조리사, 교사, 학생은 물론 농민, 가공업자, 수입업자, 수많은 단계의 유통업자, 급식시설·기구 사업자, 소모품 제조·판매 사업자, 폐기물 처리 사업자 등 셀 수 없이 많다. 각 지자체가 학교급식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어서 관계 공무원도 많을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우리 속담은 진리다. 전형적인 사례가 학교급식, 특히 저녁급식이라 할 수 있다. 학교급식 제도의 큰 변화 중 하나가 1996년 도입된 위탁급식이다. 고등학교로 급식을 확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초기비용이 필요한 정부가 예산 부족에 대한 대안과 운영 효율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도입했다.
그런데 급식비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발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영에서 급식비는 식품비, 운영비, 인건비로 구성되는 반면 위탁은 기업이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또한 밥을 많이 팔아야 이윤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들은 저녁급식을 ‘유치’했다. 위탁은 그 기업이 아무리 ‘착한 기업’이라도 구조적 결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식중독 사고나 관리자 뇌물수수 등의 문제가 나타났고 이는 위탁급식 폐지 운동으로 이어져 현재는 극히 일부에만 남아 있다.
이렇듯 배가 산으로 가려는, 복잡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과 철학이다. 학교급식은 학교라는 특성상 교육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출발이 교육적 차원이 아니었을지언정 가르침과 배움을 기초로 하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므로 ‘교육’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교육기본법 제2조에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학교급식은 단순히 한 끼의 먹을거리가 아니라 ‘왜 먹는가’부터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함께 나눌까 등 생명과 나눔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저녁급식을 준비하는 현장은 끔찍하다. 점심을 마치고 휴식시간은커녕 위생적 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부산하게 움직여야 한다. 종사자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심지어 어떤 학교는 주당 법정 최대 노동시간의 한도를 초과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그런 제약 때문에 정크푸드나 가공품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은 좋아하지만, 문제는 그런 식품으로 만든 음식의 위해성이다. 이는 학교급식의 목적인 학생 심신의 건전한 발달에 정확히 배치된다.
저녁급식을 없애면 많은 사람들이 항의할지 모른다. 그러나 말만 자율이지 강제나 다름없는 야간자율학습도 함께 없애야 한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함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다운 삶’을 살아봐야 한다. 2012년 대선 당시 한 후보가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했다. 가족이 저녁밥을 함께 나누는 모습은 행복의 상징이자 ‘실체’다.
고등학생들이여! 외쳐라! 저녁밥은 집에서 먹겠다고! 그것이 빼앗긴 행복을 되찾는 길이자 자기주도적인 삶의 첫걸음이다.
정명옥 화성 동화초등학교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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