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정치 쉽다. 정부의 개성공단 철수 결정을 보고 드는 생각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고민이 없다. 입장도 참으로 시원하고 명확하다. 국민 입장에서도 이런저런 고민이 필요 없으니 참으로 투명한 정치라 아니할 수 없다. 거기에 대통령 한마디로 홍해가 갈라지듯 국민 여론이 쫙 갈라지니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따로 없다.
민생이나 경제 관련 사안이라면 재벌의 입장에서, 민족이나 통일 관련 사안이면 일본이나 미국의 입장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 재앙 관련이라면 정권의 이해관계로 판단하고 결정하니 그 배경에 대해 굳이 정치평론가의 복잡한 해설 들어가며 골치 아플 필요 없이 이 기준만 가진다면 잘 닦인 유리창 너머 풍경 보듯 투명하게 정치를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쉬운 해고를 포함한 각종 노동 개악, 역사교과서 국정화, 굴욕적 한·일 협약, 개성공단 철수, 사드 배치 등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굵직한 사안을 위 범주로 구분해 넣고 사안별로 전경련이나 아베 총리 그리고 백악관이나 국정원 등의 입장을 조금만 확인해보면 대통령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아마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토록 투명한 정치가 펼쳐지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분들도 계시겠으나 그야말로 국가의 장래를 염두에 둔다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삼권분립이 명시된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이제 ‘진박’을 세워 아예 입법부를 수하로 두고 싶어한다는 진단에 대해서 이견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 3년간 공영방송과 종편을 비롯해 대부분의 언론을 장악했고 공권력과 행정부를 수하로 뒀으며 오는 4월 총선을 통해 입법부까지 장악하고 싶어한다. 어차피 사법부야 헌재와 대법원이 장악됐으니 신경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제 두 달만 지나면 입법, 사법, 행정, 언론이 대통령의 발아래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가능성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바야흐로 파쇼 정권 진입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사를 통틀어 국가수반을 정점으로 모든 권력이 집중된 이른바 파쇼 정권이 국민의 행복은커녕 전쟁과 같은 재앙을 통해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파쇼가 ‘국민의 모든 자유를 속박하고 국가가 모든 사회구조를 이끌고 가는 것’을 뜻한다면 이미 대한민국은 파쇼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일부의 의견이 무시된 채 대통령이 화가 나서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를 배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전쟁 발발 시 대응요령이 방송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파쇼 정치의 전조 같아 보이는 것은 나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헌법에도 위배되는 차벽에 대한 항의행동을 소요죄로 부풀리려는 공권력은 이미 다가올 파쇼를 상정하고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지난 총궐기 집회 때 경찰 피해 자체 추산액이 3억6천만원이라던데 서울을 폭력으로 마비시킨 소요 행위의 피해액으로는 좀 아니지 싶다.
거듭 얘기하지만 정치 참 쉽게 한다. 물론 이토록 투명한 정치가 펼쳐지는데도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야당의 정치력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여서 우려가 크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특정 지역과 연령대의 묻지마 지지를 담보하고 간다 해도 이렇게 수준 낮고 무능한 정치력으로 파쇼 정권까지 세워보겠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너무 얕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굴곡져온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국민들은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해왔음을 알고 있기에 나부터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고 싶다. 총선을 눈앞에 둔 현재 청와대 앞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만간 그 앞에 모인 사람들 모두 모든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리며 철 지난 바닷가 썰물 빠지듯이 빠지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 근현대사는 그것을 계속 증명해왔다.
박병우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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