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 62-73. 5-2097/ 장충동 1-110, 5-2207/ 초동 106-25, 2-0379’. 서울중앙전화국 감수, 동아출판사 발행 <서울특별시 전화번호부(1960년 3월1일 현재)>에 수록된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의 주소와 전화번호다. 이 전화번호부는 인명과 상호, 광고까지 수록했음에도 국배판 383면의 아담한 책자였다. 당시 전화번호는 다섯자리 수만으로 충분했다.
민간에 전화가 보급되면서 전화 가입자끼리 나눠 갖는 전화번호부도 출현했으나 한동안은 별 쓸모가 없었다. 전화교환수에게 모모 의사요, 기생 누구요라고 말만 하면 바로 연결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런 전화를 자주 받고 나가는 기생을 ‘잘 나가는’ 기생이라고들 했다. ‘잘 나간다’는 말은 ‘전화를 자주 받는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경성부의 전화 가입자 수가 1천명을 훌쩍 넘은 1920년, 경성우편국은 일본어 가나 いろは순(한글 가나다순에 해당)으로 편집한 전화번호부를 발간하여 가입자에게 배포하고 향후로는 번호를 부르지 않는 전화는 연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화 가입자가 늘어남에 따라 전화번호부의 두께와 무게도 계속 늘어나 전화번호가 일곱자리 숫자로 바뀐 1976년 이후에는 목침이나 흉기 대용으로 쓰일 정도가 되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각 가정에 비치한 책 중 가장 두꺼운 것이 전화번호부였다.
휴대전화기가 보급되면서 전화번호부도 형체를 잃고 데이터화하여 전화기 속으로 들어갔다. 1996년 시디(CD)롬 전화번호부가 발간되었고, 뒤이어 전화번호부 책자는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물건이 되었다. 오늘날 각 개인의 휴대전화기에 입력된 전화번호부는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핵심 정보다. 한국 사회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목되는 혈연, 지연, 학연도 전화번호부에 입력됐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 어떤 사람들은 수백명의 서명을 받아 민원을 넣어도 못 하는 일을, 어떤 사람들은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한다. 현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연고는, 전화번호로 연결된 ‘전연’(電緣)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