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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에게 주는 선물 / 오창섭

등록 2016-02-24 19:09수정 2016-02-24 19:34

‘나에게 주는 선물’이 유행이다. 자신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자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특별히 기념하거나 축하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물을 주고받을 때의 느낌과 환상 때문에 이 기묘한 행위를 이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선물이란 특별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고, 그 때문에 선물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나에게 주는 선물’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신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나는 원인과 결과를 역전시킴으로써 결과로부터 원인을 상상적으로 구성해낸다. 그리하여 나는 선물을 받을 만한 존재이기 때문에 선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선물을 받을 만한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물을 받는 나는 선물을 주는 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에게 주는 선물’은 ‘받는’이 아닌 ‘주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준다’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주는 선물’은 ‘주는’이라는 표현을 통해 선물을 주는 자신을 여유있는 삶의 맥락 속에 상상적으로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문화,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하는 문화는 2000년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경제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비정규직 비율은 확대되어갔다. 80%대에 이르는 높은 대학진학률은 치열한 사회진출 경쟁을 만들어냈고, 취업의 어려움은 스펙 쌓기 열풍을 대학에 몰고 왔다. 그즈음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3포 세대’라는 말이 뒤를 이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우울한 현실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위로를 찾아 나서게 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에게 주는 선물’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자신을 그 표현 속의 ‘나’와 동일시함으로써 상상적으로나마 위로와 격려를 받고자 했던 것이다.

2010년을 지나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 문화는 더욱 확대되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확산을 촉진시킨 중요한 배경이었다. 2009년 말 국내에 출시된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 사용자는 매년 급격히 늘어났고, 그에 따라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도 빠르게 증가했다. 에스엔에스는 정보의 공유와 소통만을 돕는 미디어가 아니다. 에스엔에스는 사용자로 하여금 에스엔에스에 최적화된 정보를 찾아 나서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세상을 에스엔에스의 시선으로 보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일상의 모습을 단순히 올리고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일상을 만들어가도록 변화시키는 장치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에스엔에스의 특징이 ‘나에게 주는 선물’의 유행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오창섭 건국대 교수·디자인문화연구자
오창섭 건국대 교수·디자인문화연구자
‘나에게 주는 선물’은 사실 ‘내가 구입한 상품’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가 구입한 상품’이 평범한 일상을 암시한다면 ‘나에게 주는 선물’은 뭔가 특별한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 축제 속에서 나는 존중받고 대접받을 만한 존재가 되고, 내가 구입한 상품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것이 된다. 환상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이 축제에 기꺼이 몸을 맡기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개인들을 끊임없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은 비록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뿌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일 것이다.

오창섭 건국대 교수·디자인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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