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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북 확성기와 인민군 귀순자 / 주승현

등록 2016-02-29 18:57수정 2016-02-29 19:25

“인민군들도 하루빨리 자유를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상 귀순을 권유하는 멘트였다. 운전 중 무심코 주파수를 돌리다 에프엠(FM)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 이후 국방부가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인 ‘자유의 소리 방송’과 연동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교도소에 수감된 고향 친구이자 군 동료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노크 귀순’ 장교로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진 그는 몇 해 전 비무장지대를 돌파한 인민군 엘리트 장교였으나,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형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필자도 귀순 전 북쪽 비무장지대에서 제압방송요원으로 군복무를 했다.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으로 보내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북한 군인들과 주민들이 듣지 못하게 하는 업무를 담당한 것이다. 체제비판뿐만 아니라 인민군을 동요시켜 귀순을 유도했던 대북 확성기에서는 지금처럼 자유를 찾아 귀순한 선배들의 행복한 삶이 매일같이 전해졌다. 그러나 정작 대북방송을 듣고 휴전선을 넘어가는 인민군은 없었다. 귀순 후 나에게 찾아온 심리전 관계자가 대북방송을 듣고 넘어왔느냐 하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했다가 실망하는 모습에 괜히 미안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이후 남북한의 합의로 확성기 방송은 중단되었고, 지난 10년간 비무장지대에서 근무를 하던 중 휴전선으로 넘어오는 인민군 귀순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진행하던 때보다 많은 7명을 기록했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온 그들의 삶은 과연 행복했을까? 안타깝게도 세상을 뜬 이도 있고 영어의 몸이 된 이도 있다. 일부는 탈남(脫南)하여 외국을 떠돌고, 나머지는 외상 후 스트레스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작년에 ‘숙박 귀순’으로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주인공은, 자신에 대한 신속하고 자세한 정보공개 탓에 고통과 죄책감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체제경쟁이 약화됨에 따라 휴전선을 넘어온 귀순자들에 대한 작은 배려와 환영마저 모두 사라졌다. 엘리트 탈북인들을 제외한 여느 탈북민들과 마찬가지로 귀순자들은 ‘실업’과 ‘호구지책’의 사선에 서야 한다.

심지어 그들은 3만명 가까운 탈북민 사회에서도 주변부가 되고 왕따가 된다. 같은 탈북민이지만, ‘어떻게 부모형제를 버리고 공개적으로 휴전선을 넘어올 수 있느냐’ 하는 노골적인 힐난을 받는 것이다. 특히 사회 무경험자로서 정착의 어려움은 곱절로 가중된다. 무엇보다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흔한 군부대의 안보강의에도 초청받지 못한다. 종합편성채널에서 활약하는 많은 탈북미녀들을 차치하더라도, 군 귀순자들 대다수는 ‘노크 귀순’, ‘숙박 귀순’, ‘호출 귀순’ 등의 (군의 경계망을 뚫은) 경험자이기에 안보교육에 오히려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뭔가 본말이 전도된 듯싶다.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일부 탈북민의 말을 빌려 포탄보다 더 위력적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정작 휴전선에서 넘어온 군 출신 귀순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확성기 방송과 같은 심리전 수단들의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심리전에 진실이 없다면 결국 신뢰를 잃게 된다. 사선을 넘어온 이들이 상식적인 수준에서라도 생활을 영위하며 살 만할 때라야, 그 모습이 진실되게 전달될 때라야 비로소 대북방송에 대한 신뢰뿐 아니라 남한체제에 대한 동경까지도 확보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넘어온 것이 후회될 뿐이다.” 면회실 창살 너머 저편에서 그가 나에게 던진 마지막 한마디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주승현 통일학 박사·민주평통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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