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한 것 중 가장 나은 정치체제다”라고 했다. 역사상 여러 정치체제 중 가장 공공선을 추구하기 좋은 체제이지만, 과반수만 확보하면 사안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쉽게 가부가 결정나는 점을 꼬집은 것일 테다.
다수결. 이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결정적 약점이다. 반수 이상의 찬성(혹은 반대)을 확보한다면 그 어떤 의견도 관철할 수 있다. 의회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의 경우, 집권당이 과반 의석만 확보할 수 있다면 입법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할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권력의 분산과 상호 견제를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상충하므로 이를 보완할 여러 장치를 마련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필리버스터, 한국말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이다.
취지는 다수결의 횡포를 소수집단이 막아낼 수 있게 하는 것. 요건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무제한 토론 요구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모두가 우려할 만한 ‘그 문제’가 생긴다. 과반수가 아닌 3분의 1의 의원을 확보한 정당엔 그 어떤 법안의 통과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래 가지고서야 ‘과반수만 확보하면 전부 오케이’에서 ‘3분의 1만 확보하면 전부 노’로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진다. 왜 이런 법이 있어야 할까?
필리버스터는 합법적 ‘법안 통과 거부’가 아니라 ‘의사진행 방해’로 고안되었다. 법안 통과 여지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연할 수만 있게 되어 있다. 그 지연시간 동안 각 당은 해당 법안에 대한 여론 형성을 시도할 수 있다. 집권당은 해당 법안의 통과의 당위성에 대해, 반대 당은 부당성에 대해. 또 그동안 유권자들은 법이 옳은지 직접 따져보고 그들의 대리인인 의원들에게 민의를 전달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물론 그 선택이 정답인가 하는 문제는 별개이지만, 최소한 국민 대다수가 생각해볼 틈도 없이 느닷없이 날치기 통과되는 반민주적 입법은 방지할 수 있다.
여당은 필리버스터를 무시하고 법안 처리를 강행할 수도 없고, 반대로 이것을 야당이 특권으로 생각하여 수시로 남용할 수도 없다. 두 경우 모두 각 당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유권자들의 선거에 의해 심판되어 차기 권력 획득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만드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충실한 제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처음 미국에서 필리버스터가 시도되었을 땐 지연시간 동안 빠르게 여론을 형성해줄 만한 대중매체가 없었기에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디자인한 제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초기의 취지를 떠나, 현재에 이르러서도 필리버스터를 여러 민주국가에서 법률로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올바로 기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지금의 필리버스터 국면에서처럼 말이다. 필자도 이번 필리버스터 덕분에 테러방지법의 타당성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게 되었다. 19대 국회 야당 의원들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응원한다.
김정웅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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