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최근 한·일협상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지만, 사실 그 내용이 3·1절 기념사에 가장 직접 부합하는 사안이다. 박근혜 정부는 100억원 수준의 돈으로 아베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영구 종결한다고 합의했으며, 이러한 굴욕적인 합의조차 아베 정부가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합의 무효화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를 통해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굴욕 그 이하의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기념사에서 이런 결과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지녀야 할 책임감은 찾을 수 없었다.
북핵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대응방식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현재의 대응방식은 과연 새로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 조처는 이전에도 반복되었다. 이전과 다른 강도가 예상되지만, 그 실효성은 중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 그런데 북한의 핵실험을 통해 형성된 관련국 공조의 기회를 박근혜 정부가 충분히 살렸다고 볼 수 있나? 오히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마찰을 초래하여, 한국은 북핵 문제에 집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했지만, 개성공단 폐쇄 이후 우리가 북한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는 무엇인가? 대북협상이든 대북압박이든 대한민국이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 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는 우리 국민들의 안보와 경제적 부담은 커지기 쉽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진정한 평화통일, 부강한 한반도’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국내 경제 문제와 관련하여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그리고 4대 구조개혁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회 마비, 직무유기 등으로 국회를 비판하며, ‘민생 구하기 서명운동’에 국민들이 직접 나섰다고 했지만, 그것은 대통령이 직접 나섰던 것 아닌가? 대통령은 국민이 대한민국을 바꿔왔다며 서명 참여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박 대통령에게 국회는 설득과 협상보다 굴복의 대상에 가까운 것 같고, 국민은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대리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국회의 기본 역할 중 하나는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대한 견제이다. 그리고 현재 국회의 합의를 가로막은 장본인은 박 대통령이다. 야당과 합의를 도출했던 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압박으로 물러나고 말았으며, 그 이후 국회의 교착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또한 현재 야당의 입장은 정부안 전면 거부가 아니라 부분 거부인 데 비해, 현 정부는 사실상 원안 통과 입장에 가깝다. 정부가 테러방지법으로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시키려 한다면, 야당으로서 이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국내정치 개입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려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가 서로 다른 정당 간의 심의와 협상 기구라고 볼 때, 박 대통령의 입장은 국회의 특성을 무시한 일방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지난번 선거에서 나온 ‘대통령을 지키자’는 주장을 넘어, 이번 선거에서는 대통령이 자신의 성과가 아니라, 자신의 실패를 이유로 야당 심판을 강조하는 선거를 경험하게 될 것 같다.
박용수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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