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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임정, 이승만과 그 추종자의 차이 / 이만열

등록 2016-03-21 18:28수정 2016-03-21 19:54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임시정부(임정)는 운동단체이지 정부는 아니다’는 요지로 발언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 말에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음인지, 김 관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방문해 해명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가 고위 공직자임을 감안할 때 그런 발언은 간과할 수 없다.

한 국회의원은 이를 듣고 “임정을 운동단체로 격하시킨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의 발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고 국민의 역사상식에 도전하는 망언”이요 “이렇게 잘못된 역사의식을 가진 분이 어떻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김 관장의 발언이 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한다고 보는가. 임정이 정부가 아니고 운동단체라면, 현행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과 제헌헌법에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명시한 것이 왜곡, 부정되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1948년 정부 수립 당시의 인식과도 상치된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이승만은 앞으로 세울 정부는 기미년에 13도 대표들이 서울에서 수립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라는 요지로 말했다. 이승만이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라고 한 것은 3·1운동 후 상하이(상해)·블라디보스토크·서울에 세워진 세 임정이 그해 9월11일 통합정부로 재출발하면서 한성정부를 정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은 임정을 계승한다고 했을 때, 그 임정은 ‘운동단체’가 아니고 분명히 ‘정부’였다.

임정은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를 계기로 피난길에 올라 1940년에 충칭(중경)에 이르기까지 풍찬노숙했다. 그러나 임정은 출발 때부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라는 헌법적 기초 위에 이당치국(以黨治國)의 정당정치를 수행했고, 그 뒤 좌우연합정부를 수립해 독립운동의 영도기관으로 활동했으며, 예하에 광복군을 두고 연합국과 항일공동전선을 펴는 한편 국내 정진대 파견을 준비하다 해방을 맞았다. 임정을 ‘운동단체’라고 인식하는 것은 임정의 이런 존재와 활동을 무시하거나 거기에 무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제헌국회 때의 일이다. 제헌헌법의 초안은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는 정도였다. 이를 본 이승만이 국회 본희의에서 새로 수립되는 정부가 임정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전문에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명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승만의 노력 덕분이었다. 대한민국이 임정을 계승한다고 했을 때, 임정을 ‘운동단체’로 보았다면 그게 가능했을까.

1948년 정부수립 후, 이승만이 이끄는 정부는 임정 때부터 사용해 온 ‘대한민국’ 연호를 그대로 사용했다. 국회 개원 연설에서 이승만이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을 관철시킨 것이다. 특히 정부수립 때 공식문서에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쓴 것은 대한민국이 임정의 정통을 끊임없이 계승했음을 웅변하는 것이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며 누구보다 대한민국 자랑에 앞장서왔던 김 관장이 대한민국을 한 ‘운동단체’의 후신으로 인식하다니, 그건 그가 자랑해온 대한민국을 모독·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승만은 뒷날 자기를 추앙하면서 ‘국부’로 모시겠다는 이들이 혹시라도 임정을 부정할까 봐 헌법 전문에 이런 쐐기를 박아놓았던 것은 아닐까.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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