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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결합상품 매개로 한 독점…소비자만 ‘봉’ / 김병일

등록 2016-03-23 19:08수정 2016-03-23 20:06

‘결합상품’이란 유선전화, 이동통신, 초고속인터넷, 인터넷전화, 유료방송 등 복수의 방송통신 상품을 결합하여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초고속인터넷+유료방송’, ‘초고속인터넷+유료방송+인터넷전화’, ‘초고속인터넷+유료방송+인터넷전화+이동통신’ 상품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결합상품 시장을 논할 때 ‘시장지배력 전이’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시장지배력 전이란 어느 한 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진 사업자가 그 지배력을 다른 시장으로 전이시켜 다른 시장에서 제공하는 상품의 경쟁력과 무관하게 경쟁 우위를 점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배력 전이가 일어나는 시장의 소비자는 사업자들 간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박탈당할 수 있다.

결합상품을 통한 시장지배력 전이의 사례로 에스케이(SK)텔레콤이 자회사인 에스케이브로드밴드의 초고속인터넷을 재판매했던 경우가 있다. 당시 에스케이텔레콤은 에스케이브로드밴드의 초고속인터넷을 자신의 이동전화와 결합하여 판매함으로써, 정체된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점유율을 5년간 11.6%나 끌어올렸다. 설비투자를 통한 품질 개선의 결과가 아니라 단지 에스케이텔레콤의 이동통신 시장 지배력이 초고속인터넷 시장으로 전이된 결과였다. 그로 인해 초고속인터넷 소비자가 얻은 혜택은 전혀 없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최근 케이블티브이 1위 사업자인 씨제이(CJ)헬로비전을 인수하고 향후 자회사인 에스케이브로드밴드(아이피티브이 사업자)와 합병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수합병이 성사될 경우, 에스케이 합병법인은 이동통신과 케이블티브이 모두에서 1위 사업자의 지위를 갖게 되고, 특히 씨제이헬로비전의 사업권역에서는 60%에 달하는 압도적 점유율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거 전례에 비춰볼 때, 이동통신 및 유료방송 양쪽에서의 시장지배력이 결합상품을 매개로 상호 시장으로 전이되는 것은 물론, 초고속인터넷 등 인접 시장으로 더욱 강력하게 전이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 1위 통신사업자인 에이티앤티(AT&T)가 1위 위성방송인 <디렉티브이>(DirecTV)를 인수한 사례를 보면, 합병법인이 된 에이티앤티는 승인 후 6개월 만에 결합상품을 출시하여 경쟁 사업자를 배제시키고 급속한 시장지배력 전이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에이티앤티는 월 100달러를 지불하면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파격적인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가입 조건을 디렉티브이 계약자 및 에이티앤티의 아이피티브이 가입자로 제한하였다. 이로써 경쟁 사업자 고객들의 번호이동을 유도하고, 디렉티브이 가입자 중 에이티앤티를 이용하지 않던 1500만 가구 및 에이티앤티 가입자 중 디렉티브이를 이용하지 않던 2100만 가구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에스케이 합병법인이 결합상품을 판매하면서 더 많은 가격 할인을 제공할 것이므로 소비자들의 혜택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방송통신 시장에서 경쟁 촉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던 케이블티브이 사업자나 알뜰폰 사업자가 배제되고 이동통신 사업자들에 대한 경쟁 압력이 사라짐으로써 발생할 막대한 소비자 피해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한번 시장이 독과점적인 구조로 변모하면 걷잡을 수 없이 시장구조가 악화되고, 결국 소비자는 요금인상, 상품 선택권 제한, 서비스 품질 저해 등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사후적 행위 규제나 뒤늦은 제도 정비로 방송통신 시장의 공정경쟁과 소비자 편익을 보호할 수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김병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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