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고 아이들이 부산하다. 학급 임원을 선출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학급회를 열어 ‘반티’를 선정하는 일이다. 반티는 대개 체육대회 때 입는 학급별 단체복을 말한다. 겉으로는 학급별로 단체복을 통해 소속감을 강화하고 단결을 도모하는 목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자극적이고 튀는, 우스꽝스런 복장으로 남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것으로 변색되었다. 요란한 색상에 생경한 문구, 조직폭력배를 연상시키는 옷, 몸뻬 바지, 환자복, 교련복, 새마을복, 조선시대 저고리와 치마, 핫팬츠, 명문축구단 유니폼 등등. 여기에는 1만~3만원대의 비용이 든다. 다른 일에는 돈 쓰는 일에 매우 소극적인 애들도 반티 구매에는 적극 동조한다. 이미 반티는 집단 심리를 강요하는 문화가 되었다.
심지어 반티는 일회용이다. 워낙 튀는 모양이라 체육대회 이외의 장소에서 입지 못한다. 화학섬유 재질이거나 화학염료로 인쇄되어 냄새가 고약하고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쉽다. 태우면 엄청난 그을음과 유독가스가 발생하고 썩는 데는 수백년이 걸릴 수도 있다. 체육대회 날은 우리 학교 학생 1000여명이 반티라는 쓰레기를 양산하는 날이다. 전국의 초·중·고에 재학하는 학생들이 체육대회 날 하루의 기분을 즐기기 위해 수백만벌의 쓰레기를 양산해 지구에 엄청난 해악을 끼쳐야 할까?
필자는 4년 전부터 반티 문제를 개선하려고 학생들과 토론하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반티 문제의 심각성과 그 해결에 동의하였지만 정작 체육대회 날이 되면 요란한 반티가 다시 등장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실제로 학생들이 반티 문제 해결에 실천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반티 문제를 지구 환경 문제로까지 연관하여 학생들과 토론하면 훌륭한 환경교육이 될 것이다. 학급 토론을 통해 결의하여 반티 제작 비용으로 국제 구호단체 등에 사용한다면 더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체험이 되지 않을까? 반별로 티셔츠 색상만 통일하거나 색지나 테이프로 로고를 붙여 활용하면 어떨까? 미술 시간을 이용하여 실크스크린 등으로 면 티셔츠에 그림이나 무늬를 인쇄할 수도 있겠다. 다른 방법으로는 각 지역의 친환경 염색하는 분들을 초빙하여 반티를 직접 제작하는 친환경 염색 체험학습을 하는 것이다. 비용을 알아봤더니 재료를 다 포함해서 1만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기성의 반티 주문보다 저렴하고 안전하고 깨끗하여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지역 생태 체험 활동가들에게도 도움이 될 터이다.
60∼70년대의 학생들은 교복과 교련복이 외출복이고 체육복을 잠옷으로 썼다.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우리가 물질적 풍요를 넘어 엄청난 낭비를 하는 세태를 맞이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극적인 과소비와 쓰레기 양산을 배운다면 평생의 습관으로 이어질 것이다. 반대로 깨끗한 환경과 생태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풍부한 감성과 아름다운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기후 변화를 막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노력은 우리 아이들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태헌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