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한 사람이 책임을 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심으로 사죄하고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 또 하나는 진심으로 사죄하고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잘못을 한 사람이 사죄하지도 않고, 자리를 떠나지도 않고, 임무에 충실하지도 않고, 도리어 적반하장 격인 태도를 보인다면 어떨까? 그런데 그가 스승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심지어 그가 일반인이 아닌 스님이라면? 오늘날 동국대학교가 그렇다.
지난 8일, 약 100여명의 동국대생이 총장(보광, 속명 한태식)과 대화하기 위해 본관에 모였다. 2014년 동국대 총장선거 당시 김희옥 전 총장은 ‘종단의 뜻을 받들어’ 사퇴했고, 현 총장의 논문은 동국대 연구진실성위원회로부터 표절 판정을 받았다. 동국대 학생들은 그해부터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동국대 이사진이 총사퇴하며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사퇴하지 않은 총장은 총학생회장 등 4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학생들이 총장과 면담을 요청하고 총장이 승낙함에 따라, 학생들은 동국대 사태에 대한 총장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그러나 총장실로 향하는 길은 교직원들에 의해 봉쇄되어 있었다. 교직원들은 “학생 대표자가 있으니 일반 학생은 총장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 “학생의 폭력적인 군중심리를 믿을 수 없다”, “보광 스님이라 칭하지 말고 총장이라고 부르라”며 학생들을 막아섰다.
학생-총장 간 면담은 파기되었고, 학생 대표자들만이 총장을 항의방문할 수 있었다. 총장은 문제제기를 위해 삭발한 총학생회장에게 “나랑 머리가 똑같네”라며 웃었고, “향후 학생 대표자와 만나겠다”며 일반 학생과는 만날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학생에 대한 학교의 태도는 총체적 ‘능멸’이었다.
대의민주제는 직접민주주의의 현실적 제약성 때문에 선택된 차선책이다. 그런데 대의제가 있으므로 책임자가 구성원들과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능멸이다.
학생들의 군중심리를 믿을 수 없어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은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며, 학생들을 능멸하는 일이다.
총장의 법명을 부르지 말고 직책을 부르라는 것은 직책이 갖는 적법성과 권한에 순종하라는 압박이다. 우리는 대통령조차도 이름으로 칭할 수 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대통령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법명 호칭을 금지하는 것은 학교의 주인에 대한 능멸이다.
학생들을 막아선 한 스님은, 학생이 교직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고소하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스님이라면 ‘정토세계’를 위해 힘써야 하는데,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온갖 고소가 난무하는 ‘고소세계’를 꿈꾸는 것일까? 이는 학교에 대한 능멸이다.
또한 한 교직원은 학생들을 막아선 스님에 대해 “박세원 학우가 죽었을 때 추모하신 분” 운운하기도 했다. 고 박세원 학우는 2015년 의경 복무 중 상급자의 총에 맞아 작고했다. 그 뜬금없는 말에 박세원 학우의 생전 선배가 크게 분노하자, 교직원은 “미안해요!”라며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응하느라 아픈 기억까지 동원하는 걸 보며, 필자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 도리도 능멸당하는 것 같아 큰 슬픔을 느꼈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학교에서 발생한 일들이 데자뷔처럼 느껴진 것이다. 군중은 테러집단과 다를 바 없이 폭력적이다, 바쁘기 때문에 일반 시민과는 만날 수 없다, 선출자의 권위가 훼손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조직의 주인에 대한 능멸이 온 사회에 횡행하고 있다.
한 학생이 졸업논문을 표절했을 때, 누군가 “총장 논문도 표절 판정을 받았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 어느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부끄러웠다. 책임 있는 사람이 사죄하고 사퇴해도 모자라는데, 도리어 큰소리칠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이. 언제까지 주인이 능멸당해야 할까? 적어도 학교에서는 능멸당하기 싫다. 국민으로서는 투표권이라도 있지만, 학생으로서는 아무 권한도 없음이 안타깝다. 글을 쓰는 지금도 고소당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추재훈 서울 중구 동호로27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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