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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나의 페이스북 탈퇴기 / 박솔희

등록 2016-04-13 23:48

서울 살 때 한번은 사무실 동료가 물었다. “솔희씨는 몇십년 뒤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글쎄요, 기억되고 싶지 않은데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기록을 남긴다. 어린 시절 일기장이나 사진들, 싸이월드나 블로그,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갖 종류의 흔적이 남는다. 게다가 뭔가를 자꾸 써 젖혀야만 살아지는 나 같은 인간으로서는 더욱 그런 것들을 많이 남기기 마련이다. 그 양이 누적되고 채널이 다양해질수록 정리가 안 되고 삶이 번잡스러워진다.

나중에 박물관 차릴 것도 아니고 이 많은 기록이 다 무슨 소용인가. 제주로 이주하면서 그동안 내 삶을 번거롭게 만들던 것들을 엄청나게 정리했다. 물질적인 것들 외에 정신적인 부분들도. 온갖 메모와 자료들, 다시 들춰보기도 싫은 흑역사를 배설해놓은 일기장 등을 북북 찢어버렸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과감히 탈퇴했다. 안 쓰는 신용카드와 은행계좌도 해지하고 개인정보를 말소하려고 한다.

제일 어려운 건 페이스북 탈퇴였다. 몇년 동안 쌓아온 사진과 글 등 추억이 아깝고, 뉴스피드를 통해 편리하게 흡수하던 정보와 트렌드가 아깝고, 페이스북 아니면 지인들 근황은 어떻게 알고 살아야 할지 그 소통이 아까웠다. 나는 페이스북 중독 수준으로 이용량이 많은 파워유저였다. 사진을 찍으면 페이스북에 올렸고 생각과 감정을 죄 페이스북에 기록했다. 비공개로 쓰는 글도 많았다. 눈 뜨면 신문 보듯이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파악했고, 하루에 읽는 텍스트의 절반 이상은 페이스북을 경유해 나에게 접수되었다. 이게 건강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지만 쳇바퀴 도는 생활처럼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서울을 떠나면서 페이스북을 없애겠다고 결심했다. 페이스북에 매달리게 되는 것도 싫었지만 거기에 내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는 게 점점 더 견딜 수 없어졌다. 삶의 속도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페이스북과 멀어졌는데, 웬걸, 인간관계 다 끊어질 줄 알았더니만 오히려 전화가 오고 문자가 왔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편리하게 근황을 공유할 수 있는 건 좋았지만, 진정으로 소통되고 연결되어 있다는 친밀감은 잘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소식이 뜸하다 싶으니 전화가 걸려 오더라. 누가 진정으로 날 궁금해하고 생각해주는 사람인지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페이스북 하던 시절처럼 트렌드 흡수가 빠르지는 못하다. 누구보다 세상 소식을 먼저 알고 주변에 퍼뜨리던 내가 오히려 ‘뉴스도 안 보냐’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이라도 신문을 들춰보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인터넷상의 단편적인 정보가 편의점 즉석식품이라면 신문은 정갈한 한 끼 정식 같았다. 천천히 먹으니 소화도 더 잘되는 기분이었다.

기록이 도처에, 너무 많다. 카프카가 불태워 달라고 했던 원고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은 친구 덕분에 세계적인 고전이 됐지만, 종이도 ‘담벼락’도 흔한 요즘은 정돈되지 않은 소음과 낙서가 지나치게 많이 남겨지고 있다. 끊임없이 버리고, 또 잊어버리지 않으면 그 가운데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내게 잊힐 권리를 다오!

박솔희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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