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 교과서’(416교과서)로 세월호 수업을 하는 교사 선언에 참여했다. 학교를 밝혀서인지 교육부의 대응은 빨랐다. 131명을 침몰하는 배에서 구하려는 듯! 총선 이후 이틀 연휴에도 학교에서 연이어 연락이 왔다. 416교과서로 수업을 할 건지 물었다. 나는 이미 다 했노라고 말했다. 3월 말~4월 첫 주에 걸쳐 2학년 전체 11개 반, 1시간 꽉 채워서 수업했다고.
3월 말 정규 시간에 ‘세월호 수업’을 진행했다. 2주기를 그냥 넘길 순 없다. 하물며 인간과 사회의 반영을 늘 고민하는 문학시간에. 학생들과 동료들이 참혹하게 스러진 일을! 내 수업은 연극대본 공동창작 수업. ‘나’로부터 ‘세상’ 사이의 모든 절실함을 다룬다. 청소년의 일상, 위안부 할머니의 삶, 국정교과서, 10대의 우정과 사랑 등 모든 열쇳말을 활동지에 소개한다. 세월호도 그 안에 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세월호 특별수업을 1시간 진행한다.
두 달 연습한 노래를 기타 치며 부르고, 단원고 태민이의 생일시 ‘하늘’을 함께 읽고 먹먹해진 가슴을 쓸며 심호흡. 이제 세월호 현장을 다니며 찍은 사진을 화면에 띄운다. 모두 깨어 있다. 커튼을 쳐 어둠을 부르고 팽목항으로 간다. 빨간 등대와 바다, 제방에 묶인 리본과 현수막, 십자가 사진을 지나 무엇보다 9명의 미수습자 사진을 보며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한다. 여기저기 흐느낌. 그렁그렁한 눈들. 차마 쳐다보지 못한다. 이어, 올 초 맹추위 속에 다녀온 단원고 교실 사진으로 온다. 정문, 입구, 그리고 10개의 교실들. 교무실까지. 화면을 끈다. 칠판으로 건너온다.
안산에서 예진 아빠가 챙겨주신 책 <세월호의 진실>을 저본 삼아 ‘출항-침몰-해경-정부-언론-외면’의 흐름으로 얼개를 짜 문답으로 진행한다. 과적과 규제완화, 이윤 추구의 그늘, 침몰 직전 항적도, 10시17분 철수의 의문, 언론의 오보와 편향, 구조 부풀리기와 실제 구조의 부재, 대통령의 7시간을 미국과 일본의 사례에 견줘 이야기한다. 배·보상 7억~8억의 내막과 국가배상을 거부하고 소송 중인 가족들 이야기까지 할 때, 늘 수업종이 치고는 한다.
작년, 재작년에도 학생들은 세월호를 늘 궁금해했고, 수업은 눈물로 그렁그렁해지곤 했다. 물론 재작년 어떤 학생은 수업 후에 선생님은 왜 중립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었고, 교장선생님도 수업을 들으셨는지 중립을 지키라고 거듭 경고 및 당부를 하셨지.
중립이라! 수업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건 바로, 말하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찾아 공유하는 것이다. 교과서 안에 갇히는 게 아니라 현행 교육과정 속에서, 문학의 본질인 ‘자유’와 교사의 ‘재량’에 근거해 세월호라는 대참사를, 그것을 노래한 시를 함께 읽고 아파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부당하게 개입하고 명령하는 데 흔들리지 않고 계속 균형을 잡고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중립이다. 세월호의 흩어진 사실들을 조각모음하여 행간을 읽어내는 생각 수업이 어찌 중립 위반이겠는가.
선언을 준비하며 416교과서를 탐독했다. 꼼꼼하고 구성도 좋다.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몰아간 것도 아니고 발달 단계에 좋지 않은 질문이 있다는 교육부의 해석도 지나치다. 독일은 9살에게 의무적으로 가해 역사인 홀로코스트를 가르친다는데 말이다.
교사의 자리는 침묵도, 유한한 정권 편향의 확성기도 아니다. 세상을 가리고 입시 공부만 공부라고 강조하는 탈맥락의 자리도 아니다. 우리의 수업은 학생들이 무언가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긍지와 자유의 고양에 뜻을 둔다. 거기에는 세상을 직시하고 만나려는 노력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의 수업은 의혹투성이 정권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연명의 자리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국가관 형성의 가장 큰 걸림돌은 오히려 현 정권의 여러 행적들일 것이다.
빗발치는 전화에 마음 요동치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되지 않기로 작정한바, 진실을 찾아나선 여정을 되돌리지 않으련다. 그 과정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꺼이 겪어내겠다. 기울어가는 교실에서, 저 맑은 눈의 평형수, 학생들과 함께.
강성규 대구 달성군 하빈면 달구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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