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졌는지가 중요하죠. 저는 그걸 몰라서 답답합니다.” 대국이 끝난 뒤 이세돌 9단은 인터뷰를 통해 그 심정을 드러냈다. 그 답답함은 바둑이 단순한 스포츠 정신에 입각한 승리와 패배를 나누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바둑은 대국이 끝난 뒤 행해지는 ‘복기’를 통해 서로 왜 이런 수를 두었는지 비평하고 의견을 공유하며 왜 졌는지 반성하고 발전한다. 이를 통해 다음 대국에서 사람들에게 더 훌륭한 예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선 조금 다른 ‘복기’가 행해졌다. 이세돌은 바둑을 하는 내내 알파고의 수를 보며 갸우뚱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뇌했다. 대국이 이어질수록 이 9단의 길어지는 한숨이 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상대.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인 알파고는 상대의 침묵과 외면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세기의 바둑 대결이 끝나고 시나브로 봄이 찾아오자 사람들의 머릿속에 얼어붙은 기억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세월호 참사 2주기다. 언론은 슬금슬금 세월호 이야기를 꺼낼 눈치를 보았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은 그동안 뽀얗게 쌓인 노란 리본의 먼지를 털어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설가 박민규는 “세월호는 배가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세월호는 2년이 지난 지금에도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너무나 많다. 사고 당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한 질문은 침묵으로 일관됐으며, ‘진상 규명’이라는 단어와 함께한 시민들의 시위는 외면과 함께 폭력진압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국가의 행보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침묵하는 국가를 포기라는 이름하에 묵인해온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답이 없는 상대를 만났다고 해서 쉽사리 포기한다면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않고 외로운 싸움을 한 이세돌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이번 바둑 대국을 보며 그동안 포기한 것들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못하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말한 소설가 박민규의 말처럼 진실을 밝혀내 후세에 들려줘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비록 네 번을 지더라도 한 번의 승리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임태환 경기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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