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 프로덕션에서의 일이다. 원고료 지급일을 자주 어기기에 따졌더니 돌아온 대답. “작가가 왜 이렇게 돈돈 거려요?” 노동의 대가를 약속한 때에 달라는 것조차 과한 요구일까? 경험상 이런 제작사가 적지 않다. 경력자도 이럴진대 이제 입문하는 신참 방송작가들의 세계는 어떨까.
최근 트위터에 올라온 채용공고. “그 무엇에도 쫄지 않고, ‘오늘만 살아 볼’ 막내작가를 한 분 기다립니다. 건강한 신체와 맑은 정신을 지닌 분들의 지원을 고대합니다. 간단한 이력과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세요.”
이 몇 줄엔 중요한 게 빠졌다. 기본적인 고용 조건, 근무시간과 임금.
많은 이에게 방송작가 입문 기회를 주고자 한 선의였을 것이다. 소셜네트워크(SNS) 환경에 맞게 구인자가 필요한 사항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또 서류 통과자에겐 면접 때 근무 조건을 잘 알려줬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방송작가일 역시 일, 사회봉사나 체험프로그램이 아닌 노동. 얼마 받는지 정도는 공개하는 것이 구인의 기본 아닌가. 표현대로라면 ‘오늘만 살아 볼’ 것처럼 일하자는, 정상적이지 않은 근무 환경이 예상되는 가운데, 구인 쪽에서 필요한 요건만 쓰고 구직자가 궁금한 내용은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는 수고를 요구하는 것은, 반칙이다.
지상파 방송에서 탐사보도가 모두 사라진 와중에, 돋보이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구인 공고여서 더욱 곱씹었다. 상상 가능한 모든 외압 속에서도 방송의 공공성을 지켜내고 있는 씩씩한 제작진을 존경한다. 다만 이들이 고대하는 대로 “건강한 신체와 맑은 정신을 지닌 젊은 동료”가 대체 앞으로 얼마를 받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 쫄지 않을 일에 동참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앞뒤가 맞는 얘긴지 모르겠다.
15년 전 내가 입문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비슷한데, 막내작가들의 경우 노동 강도는 높고 입봉 기회는 부족하며 고용의 안정성은 제로에 가깝다. 방송사 비정규직 중에서도 그렇게 가장 열악한 고리에 속한 막내작가에게조차 프로그램 잘 만들기 위해 “오늘만 살아”보자는 구호를 첫째로 내미는 것은 정당한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그 방송사 건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방송작가의 이야기는 늘 마음 한곳을 뭉근하게 누른다. 어떤 악의에서가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방송사 정규직들의 무심함 때문에, 혹은 이미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경력 작가들의 묵인 속에서 이어지는 열정 착취는 과연 무죄일 수 있는지 자문한다.
구인의 최소한의 예의는 먼저 고용 조건을 밝히는 것. 그리고 합당한 정도의 노동, 즉 “오늘만 사는 게 아니라 내일도 살 수 있는 정도의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건 방송사가 아니라 그 어떤 일터에서라도 마찬가지다.
문경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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