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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학벌 타파’ 시효, 끝나지 않았다 / 송인수

등록 2016-05-09 19:19수정 2016-05-09 19:19


‘학벌없는사회’라는 시민단체의 해산 소식이 화제가 되었다. 특히 이 단체가 해산하면서 남긴 선언문의 파장이 결코 가볍지 않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사회는 학벌사회이고 현재의 입시 경쟁과 교육의 왜곡은 학벌사회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자본의 독점이 더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학벌조차 권력을 얻는 실질적 통로가 되지 못한다. 이에 학벌없는사회를 접고 새 운동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소식에 나는 심란했다. 4월26일은 <한겨레> 기자가 그 단체 대표에게 해산의 이유를 취재하는 날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단체가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 운동’을 출범시킨 날이기도 했다. 우리 운동의 취지는 “입시와 채용시장에서 출신학교로 아이들을 차별하는 행태를 법률로 금지·처벌함으로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을 줄이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 타파 시도는 여전히 절박하다. 통계청이 2009년부터 매년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교육비 지출 이유 중 부동의 1위는 ‘채용 시장에서 출신학교를 중시하는 관행’이다. 이를 부모들의 낡은 생각이라 폄훼할 수도 없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기업채용 과정 차별 관행 실태조사’에서 시민들은 채용 때 학교 및 학력 차별을 제일 심각한 차별로 느낀다고 응답했다. 또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2011~2015)에서도 국민들 93.2%는 대학 졸업장 유무로 차별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86.6%가 학벌 차별 해소 전망이 어둡다고 비관했다.

채용 시장만이 아니다. 대학입시에서 서울 상위권 대학들의 특기자 전형이나 학생부 전형 심사 단계에서 일반고 내신이 특목고 내신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는 신빙성 있는 의심이 시민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ㄱ대학은 수시 학생부 전형 1단계에서 일반고 내신 1등급을 떨어뜨리면서 외고 내신 7~8등급을 합격시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벌없는사회의 해산은 당혹스럽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이렇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그 존재감이 사라지기는커녕, 아직도 여전히 국민들을 압도하고 있다. 또한 입시 경쟁에서 자본은 학벌을 취득하기 위한 유리한 수단이라는 지위를 가질지언정, 학벌을 대체하는 힘으로 작용하지는 못하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학벌 경쟁의 부당한 싸움 때문에, 교육 경쟁과 사교육비 지출 부담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학벌 타파 운동 철수는 때 이르다. 학벌없는사회도 해산 선언문 속에서 “학벌사회를 깨뜨리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우리에겐 아직도 ‘출신학교 차별의 문제’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하긴 이 문제를 지금껏 국민 대중 운동의 차원에서 풀어 성공해본 적이 없으니, ‘아직도’라는 표현조차 적합지 않다. 학벌없는사회는 갔지만, 출신학교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 제정 국민 운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학벌 타파 운동은 결코 시효가 끝나지 않았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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