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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우리는 어쩌다가 / 김진우

등록 2016-05-30 21:22


어릴 때 봤던 미국드라마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가족의 아들이 체격이 작은 친구와 주먹질을 했고, 싸움의 원인 자체는 상대편 아이가 제공했다. 그러나 드라마는, 싸움의 원인보다 두 남자아이의 체격 차이에 집중했다. 어른들은 물론 당사자인 아들조차 체격이 작은 아이와 주먹질을 한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인정했다. 주인공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함도 있었겠으나 드라마는 그 싸움이 애초에 공정하지 않음에 초점을 맞췄다. 마치 헤비급과 플라이급은 같은 링에서 싸우지 않기로 한 것처럼,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싸움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2016년 5월 대한민국 사회에 과연 이 드라마에서 공감했던 ‘암묵적 합의’가 존재하는가?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의 호신용품 구매가 급증했다는 사실은 우리 삶의 터전이 이미 그렇지 않음을 방증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고 개인적 차이도 있겠지만, 보편적 기준으로 볼 때 여자는 남자에 비해 육체적으로 약자다. 불과 몇십년 전에는 육체적으로는 물론 학력, 직업, 경제적 능력 등에서도 여자는 약자였다. 하지만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진학, 취업, 승진에서 여성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상대조차 하지 않았던 여성과 경쟁해야 하며, 그 경쟁에서 뒤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남자들의 분노와 상처는, 이제 단 하나 남은 우월한 영역에서 상대적 약자를 향해 폭발할 수밖에 없다.

호신용품 구매,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공중화장실 개선, 본질을 호도하는 소모적인 갑론을박을 넘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뭘까? 1995~96년에 아이들을 납치하여 성적으로 학대하고 그중 네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벨기에의 연쇄살인범 사건 당시 나는 유럽에 있었다. 사건 이후 벨기에는 물론이고 유럽의 많은 도시의 광장은 촛불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찼다. 평화적인 집회 자체가 생소했던 당시의 나에게 차분하고 엄숙한 촛불집회의 분위기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를 더 놀라게 했던 것은 그들이 광장에 모인 이유였다. 그들은 범죄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대신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런 흉악한 사람을 만들어냈는가”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분석, 집단지성을 통한 해결 방안과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의 모색이었다. 이 과정에서 성숙한 언론의 힘과 지식인의 역할이 그들과 함께했음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도 20년 전 유럽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피의자에게 어쩌면 혹은 당연히 있었을 정신질환의 유무경중을 따지는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어쩌다가, 여성을 혐오한 나머지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람을 키워냈는가?”, “이별 통보를 했다고, 만나주지 않는다고, 무시당했다고 누군가를 살해할 수도 있는 인간(이 질문에선 이미 성별의 구분도 무의미하다)의 출현이 가능한 사회적 구조는 도대체 뭔가?” 또한, 이 질문과 함께 반드시 전제돼야 할 것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질문과 문제해결의 의무로부터 유체이탈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 아내, 딸, 누나, 여동생이 다음 희생자가 되지 않는다. 그래야 내 남편, 아들, 형, 동생이 다음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

김진우 건국대 디자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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