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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중증정신질환자 보호 대책 마련해야 / 홍진표

등록 2016-05-30 21:23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자가 벌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성혐오 의식과 여성 대상 폭력의 일상성에 대한 사회적 고발과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를 앞세운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극단적인 강력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를 중증정신질환자가 주변에 있을 수 있고, 조심한다고 예방할 수도 없으며, 상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공포심은 극대화됐다. 또 항상 붐비는 공간에서 극단적인 범죄가 벌어짐으로써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는 무력감을 확산시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권은 입을 모아 ‘안전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많은 노력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우리 사회는 중증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이들이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사회제도의 필요성에 직면했다. 우선 정신질환자 및 가족에 대한 지지 시스템이 강화돼야 한다.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부모가 51%, 배우자가 24%다. 반면 얼굴을 모르는 비면식 관계는 3%에 불과하다. 이는 가족이 정신질환자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우리 사회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 부양 능력이 약화되고 1인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많은 중증정신질환자들도 고시원이나 쪽방 등에서 혼자 사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치료 중단으로 병세가 악화돼 난폭한 행동을 보이고 나서야 주위에서 인지하는 경우도 흔하다. 정신보건법도 가족이 환자 관리의 책임을 지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만큼, 중증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에서도 중증정신질환자들이 지속적인 치료를 받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정신질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비자의적 입원 요건을 강화하고, 무분별한 장기 입원을 막는 내용의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지금보다 적어도 1만~2만명의 중증정신질환자들이 내년부터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게 되어, 이들에 의한 사고의 우려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난폭성을 띄는 정신질환자가 사회 내에서 의무적으로 치료받도록 하는 ‘외래치료명령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중증정신질환을 치료받다가 퇴원한 환자는 정신보건센터에 등록해 퇴원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관리받을 수 있는 제도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중증정신질환자의 망상은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한국전쟁 전후에는 공산당, 이후에는 안기부·보안사에 대한 피해망상이 많이 나타났다. 피의자가 드러낸 성별 관련 망상은 우리 사회의 남녀 갈등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그릇된 성차별 의식과 관행을 돌아보고, 이성 간 혐오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자는 위험한 존재이니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바탕을 둔 정책이 시행되지 않아야 한다. 치료를 받지 않는 중증정신질환자가 위험할 수 있지만,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자의 비율은 일반인보다 낮다. 대부분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큰 문제 없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환자들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나중에 차별받는다’는 두려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명확한 선언과 노력이 필요하다.

홍진표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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