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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난민 캠프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우리 / 바홈브와 빈 셀레마니

등록 2016-06-20 16:37수정 2016-06-20 19:53

고국 콩고민주공화국을 떠나온 지 19년이 흘렀지만 탕가니카 호수를 건너 이곳 탄자니아 냐루구수 캠프까지 넘어온 여정은 여전히 생생하다. 불안한 정치상황과 인종갈등으로 고국을 떠나던 길, 여러 명의 가족을 잃었다. 앞을 보지 못했던 삼촌은 낯선 이가 준 약을 먹은 뒤 변을 당했고, 힘든 여정으로 몸이 약해진 장모도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들마저 투치족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 어쨌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생이별을 했다. 모든 일이 갑작스러웠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공포감은 극대화됐고, 늘 불안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는 13만5천명의 난민들이 형태만 다를 뿐 모두 비슷하게 불안한 감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힘들게 난민 캠프에 도착했지만 여기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우리를 이어 캠프에 들어온 부룬디 난민들과의 갈등과 유엔의 지원에만 의존해야 하는 답답함, 우리 자녀들에게 한정되고 폐쇄된 미래를 보여줘야 하는 현실 등 캠프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슴이 답답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캠프 인근에 사는 탄자니아 원주민들이 보내는 적대감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나와 같은 난민들을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다. 자기네 땅에 들어와 유엔으로부터 더 좋은 물품을 무상으로 지원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의 굿네이버스가 우리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동시장을 건축하면서 삶에 변화가 시작됐다. 난민 캠프에만 한정됐던 우리의 생활반경은 캠프와 마을 사이 4㎞ 이내의 완충구간까지 확장됐다. 우리는 유엔에서 몇십년째 똑같이 지원하는 옥수수가루, 콩 등의 품목에서 벗어나 다양한 농수산물을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지역주민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무엇보다 서로 적대시했던 관계가 시장을 통해 일주일에 2회씩 마주하면서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묶이게 되었다. 굿네이버스는 우리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속한 운영위원회를 조직해 활동하게 했고, 시장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회계교육과 업종별 교육도 진행했다. 우리에게 새겨진 이방인이라는 낙인과 지역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공동시장에서 한데 어우러지면서 희석되고 있다.

나는 공동시장 운영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시장에서 생선을 판매하고 있다. 3만실링이었던 소득은 5만실링으로 늘어났다. 이 돈을 모아 캠프 안에 튼튼한 양철지붕을 얹은 식당을 내는 게 목표다. 안정적인 소득을 올려 가족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다. 이곳 캠프에서 태어나 이제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바윌리 역시 같은 마음이다. 이전에는 아이에게 먹일 싱싱한 채소를 구할 곳도 살 돈도 없었지만, 공동시장이 생긴 뒤 달라졌다. 시장에서 사탕수수와 오렌지를 팔며 아이와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이곳 캠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모두 제한된 삶이지만 국제기구나 엔지오(NGO)들의 지원에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개인의 잘못이 아닌 전쟁과 분쟁, 박해 등의 이유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세계 곳곳에 흩어진 난민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와 같은 난민들이 새로운 곳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편견 없는 눈으로 응원해주길 바란다.

바홈브와 빈 셀레마니 콩고민주공화국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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