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사건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번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 동기, 선후배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삼은 ‘카카오톡’ 채팅방의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음담패설 공유 사건 말이다. 추측건대, 사안이 이미 드러난 학교 이외의 다른 대학들에서도 밝혀지지만 않았을 뿐 비슷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사안에 우리 모두가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들끼리 그저 농담 몇 번 한 걸 가지고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니냐고. 면전에서 했던 것도 아니고 자기들끼리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보이지 않게 주고받은 것일 뿐인데 그걸 가지고 제재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이냐고.
그렇다. 머릿속, 마음속으로 혼자만 품고 있는 생각이야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모종의 성적 환상이 그 내용에 따라서는 부도덕한 것으로서 지탄받아 마땅할 수는 있겠지만,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처벌이나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판단할 수 있다. 합리적인 상식인의 관점에서 어떤 말이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농담’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그 한계를 넘어선 성희롱에 해당하는지를 말이다. 더구나 마음속에 담겨져 있던 것이 말이나 문자의 형태로 표출되었다면, 이는 더 이상 ‘자유’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제재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이 외부적·객관적으로 드러난 것에 대해서는 그 책임 여부를 물을 수 있다.
2006년께 국가인권위원회는 면전에서 있었던 성적 언동이 아니라 하더라도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고 간접적으로라도 피해자에게 그 내용이 전달될 수 있다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고 근무환경 자체를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성희롱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국가인권위원회 06진차465 성희롱). 모르긴 해도, 이 사건의 가해자는 자신의 말이 피해자에게 전달될 것으로는 생각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 내용이 어딘가에 기록되어 남아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결국 그 내용을 알게 되었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카카오톡 채팅방의 경우도 이 사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공개되어 있지는 않았더라도 결국 이처럼 드러나게 되었고,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었다.
누군가를 성적 대상화하고, 누가 보더라도 성적 불쾌감과 모욕감을 유발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은밀하게 공유하는 것의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성 인식의 고착화와 그로 인한 혐오와 차별, 폭력의 구조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낸다는 데에 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하나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것인데, 이로부터 어떻게 ‘존중’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성인(聖人)들만 모여 사는 ‘도덕적 사회’를 이루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으로부터 존엄성을 능멸당할 수 있는 인권침해적 ‘야만사회’로부터는 최소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당위일 것이다.
박찬성 변호사,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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