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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1996년 8월 연세대에 있었던 이들에게 / 안진걸

등록 2016-08-15 18:03수정 2016-08-15 18:51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성공회대 외래교수

2016년 여름도 참 뜨겁지만, 1996년 여름도 참 뜨거웠습니다. 그해 8월 공권력의 폭염이 연세대와 전국의 대학가를 뒤덮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요?

대학가에서 ‘범민족대회’라고 불렀던 8·15 통일 행사는 91년 경희대, 92년 중앙대를 거쳐서 6년째 진행돼왔습니다. 원천봉쇄와 대규모 충돌의 와중에도 행사가 진행되는 8월14일쯤에는 학생들의 참가를 막지 않았고, 특히 행사 마지막날인 8월15일에는 참가자들의 안전 귀가를 보장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1996년은 유독 달랐습니다. 8월15일 오후 4시쯤 경찰은 봉쇄를 풀기는커녕 대규모 병력을 연세대 교내로 진입시켜 대대적인 고립·섬멸작전을 감행하였습니다. 살벌한 대치가 계속되던 8월20일 6천명 가까이 연행되고 500명 가까이 구속되는 일대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기록에는 8월20일 진압 등을 통해 총 5848명의 학생을 연행해 462명 구속, 3341명 불구속, 373명 즉심 회부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겨우 빠져나온 학생들도 추후 계속 연행되고 구속되었기에 6천여명 연행, 500여명 구속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처럼 큰 사건에 대해서는 대개 기념식 또는 관련 행사가 열립니다. 그러나 1996년 여름 연세대에 대해서는 10주년에도 그랬고, 이번 20주년에도 아무런 행사나 조촐한 기념식도 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연세대 사건은 한국 사회에도, 당시 연세대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고, 복잡한 평가를 요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지도부가 당시 코너에 몰려 지지율이 떨어지던 김영삼 정부에 빌미를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일부 지도부의 경직된 정세관·운동관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매년 해오던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호소하는 행사를 안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김영삼 정권은 이 사건을 악용하고 탄압함으로써 학생운동을 고립시키는 데도 성공해, 한총련과 학생운동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역사를 뒤흔든 사건을 겪은 뒤 학생들과 국민들로부터 옹호받는 설득력 있는 운동으로 나아갔어야 함에도, 당시 한총련 일부 지도부가 고립과 외면의 길을 선택한 측면도 있습니다. 연세대 사건보다 사건 이후가 더 뼈아픈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3만여 학생들의 명예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외쳤던 그 젊은이들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분단의 고통과 모순에 맞서고 김영삼식 문민독재에 저항했던 청년 학생들의 당시 통일·민주 투쟁이 폄훼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때 연세대에 있었던 학생들에게 20년 만에 공개적으로 안부와 위로의 말씀을 건네봅니다. 비록 기념식 하나 열지 못하고, 여전히 우울한 추억 속에 있지만, 연세대에 모였던 그 마음들, 그 마음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마음들만큼은 참 순수하고 뜨거운 것이 아니었던가요!

더욱이 우리의 역사가 우여곡절 속에 힘겹게 쌓아온 민주주의, 평화, 인권, 민생, 상식의 성과들이 낱낱이 파괴되고, 특히 우리가 그렇게도 외쳤던 평화와 통일이 박근혜 정권에 의해 하염없이 멀어져가고 있는 이때, 우리의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기꺼이 되살려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요. 비록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많이 다르고, 때로는 소심한 시민으로 일상을 보낸다고 해도요.

김영삼 정권과 검경, 수구언론은 96년 연세대 사건을 학생들이 계획한 고의적인 점거 사건으로 심각하게 왜곡했는데, 참가자로서 단언컨대 2박3일만 행사하고 집에 가려 했던 학생들을 정권과 검경이 고의적으로 감금하고 고립시킨 사건이라는 것이 100% 진실입니다. 조촐한 모임도 못 하는 처지라고 해서 억울한 누명까지 계속 안고 갈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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