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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구의역 사고, 극한까지 떠넘긴 위험 / 이승우

등록 2016-09-05 18:47수정 2016-09-05 19:01

이승우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노동자가 부담할 위험이 증가하면, 기업이 감수할 위험은 줄어든다.’ 성과주의 임금을 분석하면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내세운 주장이다. 이는 노동 안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업이 부담할 위험(비용)을 줄일수록,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위험은 더욱 증가한다.

지난 5월28일 19살 비정규직 청년이 유명을 달리한 서울 구의역은, 스티글리츠의 언명이 너무나 비극적으로 구현된 공간이다. 승강장 안전문(PSD) 센서를 청소하던 선로 안쪽에 수백톤 전동차가 엄습했을 때, 그에겐 피신할 만한 비상구마저 없었다. 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선로 쪽에 들어갔을까. 서울시 구의역 사고 진상조사단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사고 원인을 되짚어본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유리문 4개로 구성된 안전문에서 센서가 위치한 한쪽이 고정문이기 때문이다. 고정문 쪽 센서 정비는 선로 쪽에서 할 수밖에 없다. 청년은 선로 쪽에 진입한 뒤, 고정문 쪽 작업을 하고, 비상문 쪽 센서를 닦다 변을 당했다. 고정문 설계는 서울메트로 전 역사에서 동일하다. 이는 민자 방식으로 안전문 시공과 광고 계약을 따낸 광고회사가 광고판 설치를 위해 강력히 주장한 설계 요소였다.

당시 정부와 서울시는 공기업의 재정적 어려움 해소, 비효율성 타파란 명목으로 민자 유치를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공공교통시설의 일부분인 안전문이 민간자본의 광고수입을 높여주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말았다. 선로 쪽 작업을 최소화하는 인간공학적 설계와 비상시 탈출구 개념이 돈의 논리 앞에서 무너졌고, 그간 정비원 셋은 목숨을 잃었다.

다음으로 부실시공과 업무량보다 낮게 산정된 용역업체 정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서울메트로는 민자사업 이후, 97개 역사 안전문을 자체 발주해 시공한다. 민자사업보다 시공비는 대폭 줄었고, 서울시의 요구로 공기가 무리하게 단축됐다. 서울시는 인력 감축도 지시했다. 서울메트로는 ‘분사’ 개념의 구조조정안을 수립했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청년이 몸담았던 은성이다. 서울메트로와 용역계약 체결 과정에서 은성의 정원은 과도하게 낮은 기준으로 산정됐다.

민자 쪽과 비교해 훨씬 더 고장이 잦은 부실 설비를, 더 적은 인원으로 정비해야 했던 은성의 노동자들이 도달한 결론은 ‘속도’였다. 한 조가 48개 역사를 공동 책임지므로 누군가 게으름 피우면 전체 속도가 떨어진다. 최대한 빨리 해야 휴식과 식사 시간이 확보되고, 퇴근도 제때 했다. 선로 쪽 좌우 센서를 닦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0초’였다. 만만한 시간이다. 아무리 서울메트로에서 2인1조와 관제 승인 후 작업을 강조해도 현장엔 사람도 없거니와, 20초의 위험만 감수하면 반사이익이 컸다. 속도에 매몰된 노동자들은 위험의 경계선에서 작업하는 동안 위험 인지가 만성화하는 ‘정상적 일탈’에 빠져 있었다.

정상적 일탈에 빠진 것은 은성 직원만이 아니었다. 정비원이 부족하다 보니 역무원들도 강남역 안전문 사고 전까지 선로 쪽 센서를 청소했다. 조직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물적·인적 조건이 정규직·비정규직 모두에게 정상적 일탈을 조장한 셈이다. 여기엔 선행사고 분석에서 현장 조건, 작업 관행을 포착하지 못한 채 남발된 서울메트로의 실효성 없는 매뉴얼도 한몫했다.

결국 현장에 이런 조직문화를 형성시킨 주범은 은성과 서울메트로만이 아니다. 경영효율의 미명 아래 안전비용 축소, 인력 감축을 강제한 서울시와 공공부문을 자본 논리에 따라 관리해온 정부가 ‘책임의 사슬’ 정점에 있다. 이로써 구의역 사고가 개인에게만 책임 지울 수 없는 ‘조직사고’임이 확연히 드러났다. 구의역 사고는 공공조직이 최말단 외주 노동자에게 고용과 안전 측면에서 위험을 거의 극한까지 전가한 사건이다. 경제적 성과주의와 효율 중심의 공공부문 관리는 국민들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이를 답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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