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가능할까? / 이태수

등록 2017-01-02 18:18수정 2017-01-02 19:23

이태수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원장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다. 원래 진보진영의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내세운 것은 월 130만원가량의 생계비를 그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고 개인에게 지급하여 모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좀더 완벽한 여건을 보장하자는 안이었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인 5천만명에게 지급하려면 연간 750조원이 필요하다. 내년 책정된 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1년 정부예산 전체의 약 1.8배이며, 복지예산의 6배에 육박하는 예산을 기본소득에 투여해야 한다. 그렇다고 공교육, 건강보장, 고용 서비스, 노인돌봄 서비스와 보육 등 아동돌봄 서비스를 모두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투입되는 예산도 별도로 필요하다. 감히 상상하기조차 벅찬 제도이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우리 사회의 미래 비전을 혁명적으로 재정립하자는 촛불민심이 정치인들에게 과감한 상상력을 하게 만드나보다. 김종인, 이재명씨 등이 기본소득을 막연히 언급해오더니, 며칠 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더욱 구체적으로 ‘한국형 기본소득’을 제안하여 사회적 논의를 이끄는 형국이다.

물론 핀란드나 네덜란드에서 기본소득을 실험적이나마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 그 상상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도 기본소득의 수용성을 논하게 된 근본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참담한 불평등 실상,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너무도 어려운 노인, 장애인, 청년, 아동을 키우는 가구들이 넘쳐나고 있고 중산층이라 자부한다 해도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불안한 국민들이 너무 많다는 진실이 존재한다.

그래서 핀란드나 네덜란드와는 그 목적도, 기대효과도 다르다. 그들은 근로동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나 아니면 복잡하고 충분한 수준의 현금지급 제도를 정리하려고 기본소득을 실험한다. 우리는 좀 다르다. 복지 지출수준이 매우 낮지만, 현금지급형 제도와 서비스제공형 제도상의 지출 비중이 2 대 8 정도로 후자에 치우쳐 있다. 선진복지국가는 4.5 대 5.5 정도로 거의 대등하다. 결국 우리 국민들에겐 가계의 지출에 직접 도움이 되는 현금지원이 특히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노동자나 자영업자들에게 돌아오는 소득의 파이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비정규직, 영세상인들의 소득 감소와 사회보험 사각지대화는 심각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노동자 없는 세상’을 선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현실화되면, 일을 통해 소득을 얻고 그것이 생활보장의 기본이 되는 구도 자체가 언젠가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원리와 취지를 살려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자. 현재 5살 미만의 아동을 집에서 키우는 약 100만가구에 10만원에서 20만원 정도 지급하는 가정양육수당을 100년 전부터 시행되어온 선진복지국가의 아동수당으로 발전시켜 아동에 대한 부담을 사회화한다. 기성세대가 만들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와 자립생활을 위해 사회의 부를 나누어주는 청년배당이나 청년수당도 필요하다. 자식들에게 봉양을 여전히 맡기는 이 오랜 관습을 기초연금의 증액으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장년층에겐 모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실업이나 폐업 때 실업급여를 든든하게, 질병으로 일을 못하는 자영업자나 일용근로자, 건설종사자들에겐 상병수당을, 장기실직자에겐 별도의 실업부조 급여를, 그리고 급격한 소득의 감소가 발생할 때 격감된 소득을 보충해주고 일을 다시 시작하면 갚게 하는 특별한 제도 등등을 생각할 수 있다. 즉, 노동을 할 수 없는 연령대에는 사회수당을, 일하는 연령대에는 급격한 소득의 격감에 대응해주는 일시소득보전책을 각기 구사하는 것은 우리의 복지국가를 선진화하면서도 한두 번의 진보정당 집권 내에 실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보편적 복지의 끝판왕인 기본소득에 대한 우리 사회 관심의 끝이 어디일지 정책적 상상력을 활짝 펴고 희망의 미래로 가볼 필요가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