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계란과 생리대가 안전하냐는 의문으로 온 나라가 불편하다. 부랴부랴 전수조사를 하느라 관계부처가 밤샘근무를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가습기 살균제로 참사를 겪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화학물질 안전문제가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해마다 1000여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출시된다. 기존 화학물질이 새로운 제품이나 용도로 생활에 침투하는 예는 더욱 부지기수다. 생활이 편리하고 깔끔해질수록, 맛있고 싼 먹거리가 넘칠수록 우리는 화학물질에 더 빚을 지게 된다.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기아와 질병에는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있다. 하지만 새로운 화학물질과 약물은 인체가 처음 겪는 문제라 체질적으로 더 취약한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누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취약한지는 미리 알지 못한다. 이래저래 소 잃고라도 반드시 또 철저히 고쳐야 하는 외양간인 이유다. 안타깝지만 관련 정부 부처들이 밤샘을 하면서도 국민의 불안감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몇 가지 잘못이 도드라진다. 첫째, 현행 위해성 평가가 최소한의 장치이지 해결점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위해성 평가는 이미 알려진 독성자료로 건강 피해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대부분 물질허가 단계의 기초실험 자료에 의존한다. 현행 위해성 평가체계에 대해 이미 전문가들은 문제해결능력이 없다는 선고를 내리고 있다. 예를 들면, 영유아에 대한 독성자료가 부족해서 이유식으로 계란을 먹인 아기의 문제에 답을 주지 못한다. 기존의 위해성 평가 틀이라도 충실히만 따르면 지금보다 낫겠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국민들의 핵심 관심사를 반영하여 신속히 가동될 수 있는 맞춤형 독성평가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되어 계란(鷄亂)이 시작되었지만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해결점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번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관심은 “정말 믿을 수 있게 안전한가?”이지 개별 화학물질 평가의 차원이 아니다. 해썹(HACCP)인증 전면 재정비나 저밀집 사육체계 전환 등은 늦게나마 반가운 소식이며 올바른 방향이다. 국민들은 이미 섭취한 화학물질의 건강 피해 우려에 대한 답도 요구하고 있다. 필자의 전문 분야는 아니나, 우리나라는 이미 첨단 독성평가모형과 전문가들이 있다. 셋째, 궁극적인 우려인 ‘나와 가족의 건강’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위해도 평가가 ‘어림짐작’이라면, 사람의 건강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는 ‘모범답안’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을 대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활용할 수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달걀을 가장 많이 먹는 100명에게 살충제가 검출되는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문제가 된다면 다음 단계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이런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구축한 유전체 코호트(20만명 규모. 특정한 연구 목적에 따라 모집된 표본집단) 등이 대표적이다. 여건만 마련된다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자원이다. 나아가 이런 자원들은 유전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누구이며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신속히 낼 수도 있다. 취약 계층을 고려한 화학 안전관리는 미래형 안전관리모형의 핵심이다. 국민의 눈높이와 요구가 여기까지 와 있다. 넷째, 위험 소통에서 다시 실패하고 있다. 몇 가지 살충제 분석으로 “계란은 안전하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방식은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오답’이다. 국민이 무엇을 염려하는지를 진심으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사태 때, 실제 위험보다 위험 소통의 실패로 대부분의 문제가 야기되었던 일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겸허하고 솔직하게 국민의 염려와 팩트를 기반으로 소통해야 하고, 필요하면 근거를 마련해 가야 한다. 우리에게 안전한 생활환경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은 정말 요원한 일인가? 물론 시간이 걸릴 것이며 장기적인 기반도 더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가진 역량들을 하나로 모으기만 해도 의외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부처 간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기존의 주무부서라는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 더 이상 한 부처의 업무 영역과 역량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전문가가 있지만, 아쉽게도 자기 고유 전문 영역으로 흩어져 있다. 국민 모두가 화학물질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지 답을 원하는데, 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아무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자신의 정보 활용에 동의해준 분들도 개인정보 보호에 묶여 질병 정보를 알기 어렵다. 공직의 현실을 이해할수록, 부처 간 일상 업무 영역을 넘어선 협력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국민이 안심하고 사는 것이 우선적 가치라면, 이에 복무해야 한다. 통 큰 계획과 결정이 필요하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이고 상설적인 범부처 협력체계가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장기 협력 기반이 마련된다면 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도 자신에게 익숙한 영역을 넘어서 협력하고 헌신할 것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계란과 생리대가 안전하냐는 의문으로 온 나라가 불편하다. 부랴부랴 전수조사를 하느라 관계부처가 밤샘근무를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가습기 살균제로 참사를 겪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화학물질 안전문제가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해마다 1000여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출시된다. 기존 화학물질이 새로운 제품이나 용도로 생활에 침투하는 예는 더욱 부지기수다. 생활이 편리하고 깔끔해질수록, 맛있고 싼 먹거리가 넘칠수록 우리는 화학물질에 더 빚을 지게 된다.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기아와 질병에는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있다. 하지만 새로운 화학물질과 약물은 인체가 처음 겪는 문제라 체질적으로 더 취약한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누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취약한지는 미리 알지 못한다. 이래저래 소 잃고라도 반드시 또 철저히 고쳐야 하는 외양간인 이유다. 안타깝지만 관련 정부 부처들이 밤샘을 하면서도 국민의 불안감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몇 가지 잘못이 도드라진다. 첫째, 현행 위해성 평가가 최소한의 장치이지 해결점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위해성 평가는 이미 알려진 독성자료로 건강 피해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대부분 물질허가 단계의 기초실험 자료에 의존한다. 현행 위해성 평가체계에 대해 이미 전문가들은 문제해결능력이 없다는 선고를 내리고 있다. 예를 들면, 영유아에 대한 독성자료가 부족해서 이유식으로 계란을 먹인 아기의 문제에 답을 주지 못한다. 기존의 위해성 평가 틀이라도 충실히만 따르면 지금보다 낫겠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국민들의 핵심 관심사를 반영하여 신속히 가동될 수 있는 맞춤형 독성평가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되어 계란(鷄亂)이 시작되었지만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해결점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번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관심은 “정말 믿을 수 있게 안전한가?”이지 개별 화학물질 평가의 차원이 아니다. 해썹(HACCP)인증 전면 재정비나 저밀집 사육체계 전환 등은 늦게나마 반가운 소식이며 올바른 방향이다. 국민들은 이미 섭취한 화학물질의 건강 피해 우려에 대한 답도 요구하고 있다. 필자의 전문 분야는 아니나, 우리나라는 이미 첨단 독성평가모형과 전문가들이 있다. 셋째, 궁극적인 우려인 ‘나와 가족의 건강’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위해도 평가가 ‘어림짐작’이라면, 사람의 건강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는 ‘모범답안’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을 대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활용할 수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달걀을 가장 많이 먹는 100명에게 살충제가 검출되는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문제가 된다면 다음 단계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이런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구축한 유전체 코호트(20만명 규모. 특정한 연구 목적에 따라 모집된 표본집단) 등이 대표적이다. 여건만 마련된다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자원이다. 나아가 이런 자원들은 유전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누구이며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신속히 낼 수도 있다. 취약 계층을 고려한 화학 안전관리는 미래형 안전관리모형의 핵심이다. 국민의 눈높이와 요구가 여기까지 와 있다. 넷째, 위험 소통에서 다시 실패하고 있다. 몇 가지 살충제 분석으로 “계란은 안전하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방식은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오답’이다. 국민이 무엇을 염려하는지를 진심으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사태 때, 실제 위험보다 위험 소통의 실패로 대부분의 문제가 야기되었던 일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겸허하고 솔직하게 국민의 염려와 팩트를 기반으로 소통해야 하고, 필요하면 근거를 마련해 가야 한다. 우리에게 안전한 생활환경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은 정말 요원한 일인가? 물론 시간이 걸릴 것이며 장기적인 기반도 더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가진 역량들을 하나로 모으기만 해도 의외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부처 간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기존의 주무부서라는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 더 이상 한 부처의 업무 영역과 역량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전문가가 있지만, 아쉽게도 자기 고유 전문 영역으로 흩어져 있다. 국민 모두가 화학물질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지 답을 원하는데, 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아무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자신의 정보 활용에 동의해준 분들도 개인정보 보호에 묶여 질병 정보를 알기 어렵다. 공직의 현실을 이해할수록, 부처 간 일상 업무 영역을 넘어선 협력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국민이 안심하고 사는 것이 우선적 가치라면, 이에 복무해야 한다. 통 큰 계획과 결정이 필요하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이고 상설적인 범부처 협력체계가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장기 협력 기반이 마련된다면 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도 자신에게 익숙한 영역을 넘어서 협력하고 헌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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