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혜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늦은 퇴근 후 러닝머신으로 걷기 운동을 막 시작하려던 차에 둘째가 들이닥친다. 지금 시각 밤 11시! 오늘도 여느 때와 꼭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 짐 가득 자기 키 반만한 책가방을 메고 힘겹게 현관으로 들어선다. 나는 러닝머신을 계속하면서 “잘 다녀왔니?” 하고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건네는 내게 다짜고짜 “엄마는 모르지? 모를 거야, 알 리가 있나” 한다. 무슨 얘기인지 물어도 도통 대답해줄 기세가 아니다. 하던 운동 마저 다 하고 둘째가 앉아서 무엇인가 문제를 풀고 있는 식탁에 마주 앉아 묻는다. “우리 딸, 엄마가 뭘 모른다는 거지?” 늘 그렇듯 매몰찬 대답이 돌아온다. “내일 모의고사인 거 알기나 해?” “모의고사? 올해 고1인 쌍둥이 둘째는 지난 3월에 처음으로 한번 보고 6월은 해당 지역이 아니라 건너뛴 거고 이번 9월에 보는구나” 하고 짐짓 아는 체를 해보니… 돌아오는 말이 더 가관이다. “그거라도 아니 다행이네.” 녀석의 태도가 조금 괘씸한 것도 같고 뭔가 내게 한참 틀어져 있는 녀석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부글부글 올라오는 속을 꾹 참고 대화를 이어간다. “얘야, 엄마가 모의고사가 언제인지 어떻게 알아… 3학년도 아니고 이제 1학년인데….” 이에 질세라 둘째 따님 왈 “엄마가 입시에 대해 뭘 아는 게 있는데? 아이가 학교를 잘 가려면 엄마가 더 많이 알아야 해!” “난 충분히 많이 알고 있는데… 엄마는 도무지 아는 게 없고 관심도 없어!” 한다. 나 또한 24년 가전 브랜드 마케팅 경력에서 다져진 넘버원 비밀병기, 말발로 딸을 설득하고 질책해보려 한다. “혹시 학교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준 거라면 그건 그 선생님이 잘못 생각하는 거야. 학교와 이 사회가 잘못된 거고. 어떻게 당사자인 학생보다 엄마가 무조건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해? 물론 많이 알면 좋겠지… 그치만 엄마 생각은 달라. 엄만 딸 시험 일정이나 성적보단 딸 자체에 더 관심이 많아… 무슨 말인지 알겠니.” “응~~ 알았어… 난 학교 가야 해.”(그만 잔소리하고 들어가라는 요즘 아이들 화법이다.) “너무 늦게 자지 말고 낼 시험인데 일찍 자”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지만 영 서운함이 가시질 않는다. 아니 서운함이라기보단 ‘어쩌다 이 사회가 이런 성적만 아는 아이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짧은 글 몇 자 적어 본다. 성적 위주의 줄 세우기, 아예 성적순으로 출석 자리를 정하는 그런 학교와 선생님에게 과연 아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함께 간 스페인 여행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아름답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어떤 정서적 공감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주변의 누구야 힘들건 말건 내 성적만 잘 나오고 오로지 ‘나만’ 대학 가면 그만인 세상, 새로운 프로젝트로 연일 늦은 퇴근과 야근으로 지친 엄마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그런 딸들을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스스로에 대한 자율을 기대했던 지나친 자유방임적(물론 나는 그리 생각하진 않는다) 교육의 소산물인가, 아니면 줄서기에만 익숙해진 이기적 교육계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장한 무관심의 결과인가? 오늘도 씁쓸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늦은 퇴근 후 러닝머신으로 걷기 운동을 막 시작하려던 차에 둘째가 들이닥친다. 지금 시각 밤 11시! 오늘도 여느 때와 꼭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 짐 가득 자기 키 반만한 책가방을 메고 힘겹게 현관으로 들어선다. 나는 러닝머신을 계속하면서 “잘 다녀왔니?” 하고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건네는 내게 다짜고짜 “엄마는 모르지? 모를 거야, 알 리가 있나” 한다. 무슨 얘기인지 물어도 도통 대답해줄 기세가 아니다. 하던 운동 마저 다 하고 둘째가 앉아서 무엇인가 문제를 풀고 있는 식탁에 마주 앉아 묻는다. “우리 딸, 엄마가 뭘 모른다는 거지?” 늘 그렇듯 매몰찬 대답이 돌아온다. “내일 모의고사인 거 알기나 해?” “모의고사? 올해 고1인 쌍둥이 둘째는 지난 3월에 처음으로 한번 보고 6월은 해당 지역이 아니라 건너뛴 거고 이번 9월에 보는구나” 하고 짐짓 아는 체를 해보니… 돌아오는 말이 더 가관이다. “그거라도 아니 다행이네.” 녀석의 태도가 조금 괘씸한 것도 같고 뭔가 내게 한참 틀어져 있는 녀석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부글부글 올라오는 속을 꾹 참고 대화를 이어간다. “얘야, 엄마가 모의고사가 언제인지 어떻게 알아… 3학년도 아니고 이제 1학년인데….” 이에 질세라 둘째 따님 왈 “엄마가 입시에 대해 뭘 아는 게 있는데? 아이가 학교를 잘 가려면 엄마가 더 많이 알아야 해!” “난 충분히 많이 알고 있는데… 엄마는 도무지 아는 게 없고 관심도 없어!” 한다. 나 또한 24년 가전 브랜드 마케팅 경력에서 다져진 넘버원 비밀병기, 말발로 딸을 설득하고 질책해보려 한다. “혹시 학교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준 거라면 그건 그 선생님이 잘못 생각하는 거야. 학교와 이 사회가 잘못된 거고. 어떻게 당사자인 학생보다 엄마가 무조건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해? 물론 많이 알면 좋겠지… 그치만 엄마 생각은 달라. 엄만 딸 시험 일정이나 성적보단 딸 자체에 더 관심이 많아… 무슨 말인지 알겠니.” “응~~ 알았어… 난 학교 가야 해.”(그만 잔소리하고 들어가라는 요즘 아이들 화법이다.) “너무 늦게 자지 말고 낼 시험인데 일찍 자”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지만 영 서운함이 가시질 않는다. 아니 서운함이라기보단 ‘어쩌다 이 사회가 이런 성적만 아는 아이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짧은 글 몇 자 적어 본다. 성적 위주의 줄 세우기, 아예 성적순으로 출석 자리를 정하는 그런 학교와 선생님에게 과연 아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함께 간 스페인 여행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아름답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어떤 정서적 공감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주변의 누구야 힘들건 말건 내 성적만 잘 나오고 오로지 ‘나만’ 대학 가면 그만인 세상, 새로운 프로젝트로 연일 늦은 퇴근과 야근으로 지친 엄마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그런 딸들을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스스로에 대한 자율을 기대했던 지나친 자유방임적(물론 나는 그리 생각하진 않는다) 교육의 소산물인가, 아니면 줄서기에만 익숙해진 이기적 교육계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장한 무관심의 결과인가? 오늘도 씁쓸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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