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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조교도 노동자다 / 한만수

등록 2017-11-20 18:25수정 2017-11-20 19:15

한만수
동국대 교수·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

“조교도 노동자다.”

동국대 대학원 전 총학생회장이 고발한 사건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이같이 판정하고, 총장을 검찰에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송치했다. 정부기관에서 나온 첫 공식 판정이라는 점에서, 또 많은 대학에 파장이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조교가 없으면 거의 모든 대학의 학사행정은 마비되고 말 것이다. 조교에게 거의 직원과 같은 수준의 일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급했으니 “학생 우대”는커녕 “학생 천대” 제도이다. 교수들 역시 “제자”들이 배움의 터전에서 당해온 이 부당한 노사관계를 관행이라는 이유로 못 본 체해왔다.

보도를 보면, 동국대 당국은 잘못된 관행으로서 이미 개선된 일이라는 식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사실은 예산 총액은 그대로 둔 채 조교 수를 줄인 것에 불과하다. 물론 조교에게 초과근무를 시키지 말라는 공문도 보내왔다. 그러나 조교에게 떠맡겨진 일의 분량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조교들은 ‘행정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채, 이전보다 더 많은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형식적 합법성을 갖추는 데 급급하면서 노동조건은 더 악화되고 말았다.

결국 대학당국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내고 나머지는 말단 학과에 책임을 떠밀어버린 셈이다. 조교들은 대부분 해당 학과 출신의 대학원생이니 차마 학사행정을 마비시킬 수야 있겠는가. 그러니 그들의 초과노동은 지속될 것이지만, 대학본부는 초과근무 금지 공문을 보냈으니 이제 책임은 교수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게다가 노동부 조사가 진행되자 동국대 당국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하도록 유도하고, 각서를 쓴 현직 조교만 우선 재계약하려 했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전형적인 수법이 대학에 등장하고 만 것이다.

많은 대학이 고민에 빠졌고, 일부 대학은 이미 발빠르게 대처했다고 한다. 동국대의 대응이 모델처럼 되었다니, 조교들의 비명과 모교에 대한 배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대부분 대학에서 조교를 제대로 대접하기 위한 추가예산은 전체의 0.1%에도 못 미치는데, 왜 하필 ‘학생-노동자'를 착취한단 말인가. 특히 정부당국도 기소했으니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며, ‘개악을 통한 합법화’ 시도를 엄중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동국대 학생들이 조교 문제를 제기했을까? 동국대 총장은 자기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학생대표 4명을 고소하면서 교비를 사용했다.(그는 이미 이 공금횡령 혐의로 약식기소를 당했다.) 또 자신에게 반대해 무려 50일간 단식한 학생대표를 무기정학에 처했다. 학생들이 고발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그 응보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들이 오죽했으면 그렇게까지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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