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황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활동가
저는 동물권 활동가이기 전에 미술을 전공한 작가이자 디자이너입니다. 그래서 곳곳의 디자인적 요소를 관찰하기 좋아합니다. 처음 자동차가 개발됐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봅니다.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이 차를 가진 환경을 전제로 관련된 것들이 디자인됩니다. 자동차뿐 아니라 도로, 이정표, 신호체계도 디자인됩니다. 여기서 디자인은 미술 분야에 국한된 협소한 개념이 아닙니다. 어떤 요구에 따라 새 시스템을 설계하고 만드는 넓은 개념의 디자인입니다.
지난해 개가 사람을 무는 사건이 많이 보도됐죠. 지난 18일, 이낙연 총리 주재로 회의가 하나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반려견 소유자의 안전관리 의무 강화 및 반려동물 에티켓 확산’ 방안을 발표습니다. 필요와 요구에 의해 시스템을 새롭게 디자인한 겁니다. 그런데 이 디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어깨높이가 40㎝ 이상인 개에게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밑그림 때문입니다. 논쟁을 보면, 한쪽에선 당연한 발상이라 여기고 다른 한쪽에선 과하다고 합니다. 저만 해도 다섯 살짜리 반려견 골든리트리버와 함께 사는데, 여간 황당한 것이 아닙니다. 이 디자인대로 법이 만들어진다면, 산책을 할 때마다 입마개를 씌워야 하니까요. 혹시 모를 일이니 인터넷에서 입마개를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놀라운 외신 기사를 발견하게 됐죠.
반려견을 위한 미세먼지 마스크 기사였습니다. 공기 질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빠진 중국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폐질환을 앓는 반려견도 늘어났다는 겁니다. 사람과 달리 반려견은 미세먼지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거든요. 산책을 아예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베이징에서는 반려견에게 사람용 마스크를 씌우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의 한 제조업체가 수의사들과 ‘개의 신체와 습성에 맞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당연히 수요가 적겠지만, 반려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더 편안한 마스크를 만들기로 했다”며 “마스크를 쓰고도 자유롭게 코를 핥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준다는 거죠.
입마개는 어떨까요? 그저 개가 입을 벌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내어놓은 것은 아직 콘셉트 디자인에 불과합니다. 고쳐야 할 것이 아주 많아 보입니다. 엉터리로 디자인된 제품이 보완 없이 상용화되면 시장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더 큰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입마개 의무화’라는 자극적 메시지만 읽은 사람들은 개의 크기와 관계없이 입마개를 요구할 것입니다. ‘안전한 개’임을 인증받은 40cm 이상의 개는 입마개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조항은 특히 공허합니다. 곳곳에서 개와 입마개 때문에 시비가 생길 것이 뻔합니다. 어떤 사회는 개의 입만 막으려 하고, 어떤 사회는 개의 건강을 위해 마스크를 만들려 합니다. 정부는 이 정책 디자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실사용자들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정부라는 디자이너의 고객으로서 수정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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