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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나를 보듬어준 정규직 전환 / 박찬숙

등록 2018-01-29 18:05수정 2018-01-29 19:18

박찬숙
전라남도 자치행정과

세상이 꽁꽁 얼어버렸던 겨울, 그렇지만 내겐 따뜻했던 1월2일. 정규직이 되고 발걸음이 가벼운 첫 출근이다. 엘리베이터 내 공기마저 온화하고 부서 직원들은 막둥이인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 역시 웃음꽃으로 화답했다. 내 자리를 보듬을 수 있어 행복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삶을 유지한다. 만일 고용 상태가 불안정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결국 자신과 가족의 생존이 위협에 노출된 채 불안 속에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안정된 일자리를 찾는다. 우리가 정규직을 꿈꾸는 이유다.

2017년은 촛불집회로 들어선 새 정부, 대규모 지진, 최저임금, 미세먼지, 수능 연기 등 다사다난했던 해였다. 그리고 고용불안은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떠올랐으며, 고용불안에 좌불안석인 나에게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큰 희망을 주었다. 새 정부는 일자리 창출, 지방분권 개헌, 육아·치매 국가책임제, 평화를 선도하는 강국 등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였다. 그중에서도 청년인 나는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제일 많았다.

나의 발걸음을 더듬어 보면, 대학 졸업 전 ㅅ 기업에서 열심히 일을 배웠다. 3개월 인턴을 거쳐 계속 일을 해왔다. 그 당시 취업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내 또래들보다 일찍 취업문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비정규직 문제는 항상 고민이었고, 고용에 대한 불안에 시달렸다. 결국 나는 9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회사를 나온 후에는 종종 전남도립도서관을 찾아 책과 씨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기는 진로가 불확실했던 터라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때였고, 그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유산소운동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짬짬이 무작정 여러 기업에 지원하기도 했지만 고용시장은 대부분 비정규직 채용 공고였다.

비정규직 서류 심사와 면접 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2일 관공서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 인연은 나에게 기회였을까. 근무를 해오면서 팀과 관련된 사무량 조사 보조 업무를 했다. 처음에는 그 부서의 조직체계가 어떤 구조였는지조차 몰랐다. 점차 업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꼼꼼한 성격으로 일을 하면서 계약은 계속 연장이 되었다. 일시적이지만 조금 더 고용불안을 떨쳐낼 수 있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불안감 속에도 열심히 일을 해왔던 시기, 나는 7월20일에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기사를 접했다. 그에 맞춰 내가 소속된 부서는 정규직 전환을 선제적으로 추진했고 고용노동부로부터도 전국 우수사례로 선정돼 다른 지자체의 모델이 되었다. 그 결과 정부와 전남도는 나를 포함한 비정규직 350명에게 1월2일로 정규직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해주었다.

정규직 전환이 확정되는 순간 내 머릿속엔 몇 가지 주문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선 주어진 업무를 책임 있게 처리하자. 그리고 지금의 업무를 빠르게 숙지해 베테랑이 되자. 자신의 업무에 게으르지 말자. 이러한 생각들이 한 묶음으로 다가왔다. 곧 나의 다짐이자 의지인 셈이었다.

정규직으로 근무를 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다. 나의 환경은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단순 보조 업무를 맡은 평범한 하루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당당히 업무 분장을 받아 조직 관련 동향보고, 사무량 조사, 도·시군 조직 통계 관리 업무 등을 처리하고 있다. 나는 행정업무를 보면서 보고서 작성, 언어 표현력 등이 많이 서투른 편이었지만, 한 달간 팀원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며 부족함을 메꿔나갔다. 정부 정책과 도정 등 무관심했던 일도 눈여겨보게 되었다.

고용불안을 덜었더니 비정규직과 다르게 비중이 큰 업무도 주어지고 일하는 재미도 쏠쏠해져 점차 내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소득의 여유도 생겨 의식주 생활에 지출을 하고, 부모에게 의지하던 생활에서 스스로 적금을 넣는 홀로서기로 변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를 느끼게 해줬던 정규직 전환은 삶에 큰 시너지효과를 불어넣어줬고 나를 따듯이 보듬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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